유럽방위의 책임분담 모색-미의 새 대서양헌장구상 그 의의와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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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차대전 후 미국을 중심으로 수직적으로 엮어졌던 미·유럽 관계를 평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구상이 「키신저」의 이른바 새로운 대서양헌장 모색이라는 어휘로써 공식적으로 윤곽을 드러냈다.

<미국경제 침체의 영향>
「키신저」가 말한 새로운 대서양헌장이란 단적으로 미국 경제침체에 대한 「유럽」의 지원 및 「유럽」방위의 책임분담 방법을 모색하자는 「프로포즈」를 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1년 미·영에 의해 발표된 대서양헌장은 2차 대전 중 및 전후 세계에 대한 양국의 정책상 공통되는 지도원칙이었다.
8개항으로 된 이 헌장은 다음해인 42년 연합국 측의 공동선언 형식으로 찬성을 받았다. 표면적인 내용은 각 국의 주권존중, 경제적 번영을 위한 통상 및 원료의 동등조건에 의한 이동 등을 골자로 한 것이었으나 바로 미국의 「유럽」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지도자로서의 등장을 뜻하는 것이었다.
전후 미국은 이 원칙을 바탕으로 하여 「슬라브」족의 서진 압력에 대한 「유럽」의 후견국으로서 미·「유럽」 관계를 밀착시킬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41년의 대서양헌장이란 군사적인 동맹관계에 역점이 두어진 것이었다.
전화로 피폐해진 「유럽」은 소련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경제력·군사력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상 미국의 소련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과 「유럽」에 대한 경제원조는 이 지역의 부흥에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 반면 미국의 「유럽」시장 확보라는 측면, 경쟁자인 소련에 대한 동맹국결속이라는 효과 면에서 미국이 얻은 이익도 큰 것이었다.


이는 소련과의 충돌가능성을 가상했던 냉전시대에 미국의 「유럽」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 행사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적인 번영, 동서 접근에 의한 무력충돌 가능성 감소에 따라 미·「유럽」관계에 미묘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하여 전통적인 맹방으로서 밀월시대를 누렸던 미·「유럽」관계는 「유럽」공동시장(EEC)을 모체로 한 「유럽」경제력의 성장으로 퇴색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2차대전후 한국전·월남전의 전비지출과 대외원조에 따른 「달러」화의 막대한 해외유출, 70년대에 들어서며 악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국제수지는 72년에 63억「달러」의 수입초과 현상을 나타내 불과 1년 남짓 동안 「달러」 평가절하를 두 차례나 단행하는 요인이 되었다.
문제는 미국의 이러한 국제수지악화와는 아랑곳없이「유럽」국가들이 성장 된 경제력을 뒷받침으로 미국에 대한 대결의식이 움터 정치관계마저 저해할 강력한 경쟁상태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유럽」공동체(EC)를 중심으로 역외관세정책면에서 굳게 결속, 미국경제의 진출을 강력히 견제하고 있는 「유럽」제국의 관세장벽은 73년에 시작될 두 지역간의 경제전쟁의 도화선이라 비유되어 35만의 미군을 이 지역에 주둔시켜 막대한 방위부담까지 지고있는 미국에 씁쓸한 맛을 안겨주었다.
미국으로서는 미국상품의 국제경쟁력이나 경제구조의 취약성에서 국제수지악화-국내경제침체가 빚어졌다기보다는 「유럽」의 교역상대국의 인위적인 무역장벽에 원인이 있다고 일말의 배신감마저 느끼는 형편이다.

<방위비 요구에 소극적>
미국의 방위혜택을 받아 가며 경제적 번영을 누려온 「유럽」에 대해 미국은 여러 차례 비용의 분담을 요구해왔으나 「유럽」제국은 매우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미국 의회를 비롯, 국내 여론은 미군의 감축을 요구하고 나서 현실적으로 대소관계에서 일방적으로 감군 할 형편에 놓이지 못한 행정부를 궁지에 몰리게 해왔다.
이번 「키신저」의 방위비 분담 제의란 「유럽」주둔 미군경비를 수혜 당사자인 「유럽」 에 떠맡겨 악화된 재정형편을 호전시키자는 구상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미국은 이미 지난해 대통령선거가 시작되며 「닉슨」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서 월남화 다음의 제1목표로 「유럽」과의 관계조정을 내세웠다.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상 소련과의 공존모색과정에서 「유럽」과의 정치·경제적인 협력 없이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는 판단에서 나온 대「유럽」 유화「제스처」로 볼 수 있다.

<새 대서양동맹용 강조>
따라서 「키신저」의 새로운 대서양헌장 모색이란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이미 여러 차례 천명되어온 미국의 대「유럽」자세를 적극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미 「닉슨」대통령은 73년의 외교 교서에서 『73년은 「유럽」의 해』라고 천명한바있거니와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영·불·서독을 순방하며 「키신저」가 『새로운 대서양의 동맹관계』를 여러 차례 강조했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때 「키신저」는 군사적인 안보를 중심으로 했던 재래의 NATO동맹은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NATO의 발전적 체제개편의사를 시사했다.

<군사보다 경제에 역점>
이때의 「키신저」 발언은 군사동맹체인 NATO와 경제동맹체인 EC를 연관기구로 경제 및 재정문제까지 NATO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계속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추측되었다. 이로 미루어 이번의 새로운 대서양헌장 모색 구상이란 군사적인 면보다 경제적인 면에 역점이 두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구상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지는 아직 미지수에 속한다. 「유럽」의 대미자세는 미국이 중공과의 접촉, 소련과의 전략무기제한회담(SALT)에서 서구동맹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독주한데서 온 환멸로 자주적인 자각증세를 일깨워 종전보다 경화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럽」의 태도는 「키신저」의 새로운 대서양구상이 발표되자 「프랑스」 「유럽」일부에서 일고 있는 비판적인 반응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 앞으로의 미국의 대 「유럽」정책이 쉽사리 매듭지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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