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철도노조와 12시간 치열한 몸싸움 … 끝내 허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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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파업 14일째인 22일 오후 경찰은 서울 정동 민주노총 입주건물에 진입하여 일부 노조원들을 연행했으나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에는 실패했다. 경찰은 이 날 현장 주변에 노조원의 추락에 대한 대비책으로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외부 시위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경찰 차량으로 건물 주변을 가로막았다. [박종근 기자]

철도파업 14일째인 22일 서울 정동 일대는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경찰이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간부 9명이 은신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경향신문사 건물 13~15층)에 강제 진입하면서다.

 본격적인 강제 진입·체포 작전은 오전 9시9분쯤 시작됐다. 경찰은 69개 중대 5500여 명의 병력을 건물 주변에 배치하고 600여 명을 체포조로 투입했다. 건물 주변엔 노조 지도부 등이 건물에서 뛰어내릴 것에 대비해 대형 에어매트 2개가 깔렸다. 경찰이 경향신문사 건물 내부로 진입을 시도하자 민주노총 관계자와 통합진보당 김재연·이상규·김선동 의원 등 500여 명이 정문 앞을 막아 섰다. 9시40분쯤 연정훈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이 시위대 앞에 섰다. “안 비키면 공무집행 방해로 연행하겠다”며 세 차례 경고한 뒤였다. “체포영장을 집행하겠습니다. 물러서십시오.”

경찰, 건물 유리문 차례로 깨고 진입

 곧이어 경찰은 정문 앞을 지키던 민주노총 관계자 등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측은 유리로 된 정문을 잠근 채 물러서지 않았다. 오전 11시쯤 경찰은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유리문을 깨고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일부 노조원은 깨진 유리 조각과 얼음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경찰은 건물 내부에 있는 자동 유리문에 다시 가로막혔다. 자동문 안쪽 건물 로비에서 민주노총 관계자 등 200여 명이 문을 밀며 막았다. 경찰은 최루액을 쏘며 진입을 시도했다. 건물 비상문과 자동 유리문을 차례로 깨고 낮 12시50분쯤 건물 로비에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양성윤·이상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등 138여 명이 연행돼 서울시내 12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1층 로비에 진입하면서 경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자 양쪽 비상 계단으로 2개 조가 흩어져 순식간에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2층 비상 통로에 있는 철문까지 뜯어낸 뒤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13층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노조 관계자들은 소화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경찰을 막아 섰다. 경찰은 저항하는 노조 관계자 등을 끌어내면서 건물 위로 전진했다.

 경찰이 계단을 통해 진입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건물 밖에선 야당 의원들과 민주노총 지도부 등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은 경찰이 건물 안으로 진입하자 ‘수도권 조합원 즉시 집결’ 등의 지침을 각 지부에 내려보냈다. 오후 1시30분쯤엔 민주당·정의당·통진당 소속 의원 15명이 건물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강제 진압을 비판했다.

노조, 바리케이드 치고 물 뿌리며 저항

 경찰은 오후 3시45분쯤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이 있는 13층 바로 아래까지 접근했다. 하지만 노조 관계자 등이 출입문 앞에 의자 등 사무실 집기를 밧줄로 묶어 바리케이드를 친 상황이었다. 경찰은 바리케이드를 뜯어내며 진입을 시도했지만 노조 관계자 등이 소화 호스로 물을 뿌리며 저항했다.

 경찰은 오후 6시25분쯤 경향신문 건물 17층 옥상까지 모든 계단을 장악했다. 옥상에서 농성 중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민주노총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13∼15층과 16층의 금속노조 사무실·화장실 등을 수색했다. 그러자 민주노총 측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휘부는 경찰병력이 투입되기 전 새벽에 이미 건물을 빠져나갔다”고 주장했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도 오후 8시쯤 “지도부는 무사히 피신하여 건재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노조원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경찰은 민주노총이 임대한 14층 사무실에 노조 지도부가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2시간여 동안 14층 사무실을 집중 수색했다. 경찰이 14층에 있던 100여 명의 노조 관계자 등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지만 체포 대상자는 없었다. 12시간 넘게 펼쳐진 체포 작전이 결국 실패로 결론 난 셈이다. 경찰은 이날 체포에 나섰던 노조 지도부 9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노조 지도부가 민주노총 사무실에 은신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작전을 수행한 것”이라며 “사무실에 대한 추가 수색 등을 통해 행방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 위원장 “무사히 피신해 건재”

 경찰이 이날 전격적으로 강제 진압에 나선 것은 철도노조 파업이 ‘마지노선’에 임박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코레일 측이 네 차례에 걸쳐 업무 복귀를 명령했는데도 파업이 장기화되자 지도부 체포로 압박을 가한다는 방침이었다. 역대 최장 기간 파업으로 피로가 누적돼 8000여 명의 필수 인력으로 더 이상 철도 수송을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날 경찰 진입에 대해 “대형 망치로 유리 창문을 깨면서 강제 진입을 시도한 건 민주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불법 파업을 엄단한다는 원칙에 따라 법 집행에 나선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찰은 김명환 위원장 등 파업 주동자 10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직후인 지난 17일부터 경향신문사 인근에서 잠복하면서 노조원들의 동향 등을 파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지도부가 체포될 경우 파업의 동력이 상당 부분 떨어질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실제 2009년 11월 철도노조 파업 당시 경찰이 지도부 체포에 나서면서 8일 만에 업무가 정상화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경찰청을 방문해 “수색영장 없이 체포영장만 가지고 민주노총 사무실에 진입한 것은 무리한 법집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 관계자는 “형사소송법 제216조 1항 1호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 없이도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타인의 주거 등을 수색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글=정강현·이유정·장혁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민주노총 본부 진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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