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간직 산동네 … 거기서 유치환·장기려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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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언덕배기. 이곳을 누비는 도로와 골목에 ‘이바구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바구’란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란 뜻. 일본과 독도 영유권을 놓고 담판을 지은 18세기 후반의 어부 안용복에서 음악감독 박칼린(46)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 온갖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바구’를 관광자원화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소외계층이 많이 모인 부산의 ‘도심 속 오지’였던 이곳은 이젠 주말이면 수백 명의 관광객이 찾는 역사·문화 명소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부산시 동구 범일동·초량동 등 일명 ‘산복도로’ 일대 얘기다. ‘산복도로’란 ‘산 복판에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부근엔 6·25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만들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정전 60년이 지나 부산이 싹 바뀌는 가운데서도 이곳은 유독 시간이 멈춘 듯 거의 바뀜이 없었다. 한때 흔했던 ‘재개발 사업’도 이 동네는 외면했다.

산복도로 사연, 주요 인물 기리는 명소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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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심하던 부산시 동구청은 역발상을 했다. 개발과 철거를 할 게 아니라 지금 그대로를 관광자원으로 삼는 거였다. 그리고 올 4월 ‘이바구길’이란 이름을 붙인 뒤 하나하나 관광시설을 조성해 8월 공식 개통했다.

 실제 이 동네엔 ‘이바구’ 소재가 많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故) 장기려(1911∼95) 박사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의료보험조합 ‘청십자의료협동조합’도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올 4월 산복도로변에 ‘장기려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나훈아·이경규·박칼린을 배출한 초량초교 역시 이 동네에 자리했다. 안용복의 고향이기도 하다.

나훈아·이경규 등 이곳서 초등학교 나와

1960년대 부산 산복도로 일대 전경. 지금도 일부 지역은 이 모습 거의 그대로다. [사진 부산 동구청]

 시인인 고(故) 청마 유치환(1908∼67) 선생이 자주 걸었던 경남여고~수정가로공원 648m는 ‘시인의 길’이라 명명하고 끝자락에 ‘청마우체통’을 만들었다. 편지를 부치면 1년 뒤 배달되는 ‘느림보 우체통’이다. 지난 21일 우체통이 있는 곳에 여덟 살 된 아들과 함께 온 김은경(39·부산 망미동)씨는 “속도와 인터넷에 빠진 아들에게 ‘느림의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는 교육현장”이라고 말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으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자 고(故) 김민부(1941∼72) 시인을 기리는 김민부 전망대도 근처에 있다. 이곳에 서면 다닥다닥 붙은 산복도로 동네 주택들을 배경으로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바구길에 관광객이 몰려오면서 주민들은 새로운 생업을 찾았다. 협동조합과 마을 기업을 만들어 레스토랑·카페 등을 연 것. 국숫집 ‘할매 레스토랑’, 찻집 ‘달마’, 카페 ‘천지 삐까리(하늘과 땅에 빽빽할 정도로 많다)’, 게스트하우스 ‘까꼬막(산꼭대기)’ 등 10여 개소가 바로 그런 곳이다. 요즈음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관광객을 맞느라 바쁘다.

염색공방·카페·게스트하우스도 들어서

 이런 ‘마을 가게’ 중 하나인 안창마을의 관광객 대상 염색 체험장 ‘오색빛깔 공방’은 22일 저녁 동네 노인 20여 명을 초청해 떡과 음식을 놓고 작은 잔치를 열었다. 강숙자(67·여) 공방 대표는 “마을에 관광객들이 오면서 생기가 돌아 좋고, 작은 수입이지만 나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쓸 수 있어 더욱 즐겁다”고 말했다.

 부동산 값 또한 올랐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면적 100㎡ 안팎의 집들은 올 초 9000만원에서 현재 1억1000만원으로 2000만원가량 올랐다. 부동산 중개업소가 문을 닫는 일요일에는 외지 투자자들이 ‘전망 좋은 집 구함’이라고 써 문에 붙여놓은 쪽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정영석(62) 동구청장은 “지역에 깃든 역사와 인물을 관광상품화하면서 주민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부동산 값이 올라 재산이 늘어나는 1석2조의 효과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부산 글=김상진,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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