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에게 '통일은 좋은 것' 알도록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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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성택 처형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그런데도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지난 9월 북한 엘리트간 권력투쟁을 예측해 화제를 모은 브루스 베넷(Bruce Bennett·62·사진) 랜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진단이다. 한반도 이슈 및 군사 전문가인 그는 장성택 처형 사건 이후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9월 발표한 ‘북한 붕괴 가능성 대비 방안’에서 그는 김정은의 암살 등 권력 공백 상황이 생기면서 급변 사태가 시작되고 권력 엘리트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하면서 정권 붕괴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었다.

 장성택 처형 사건 이전까지는 북한에서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2%로 예상했다는 그는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함으로써 쿠데타 발생 가능성이 5∼10%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한 이유는 장성택의 권력이 너무 강해져 자신의 정권이 전복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어떤 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자 김정은이 군부와 손잡고 장성택을 제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고모부 처형으로 상층부 권력 엘리트에 충성을 강요하고 있지만 잔인한 숙청 때문에 더 많은 간부들이 김정은에게 면종복배(面從服背·겉으로 순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음)할 이유를 더 제공했다. 숙청 범위에 따라 경험 없는 젊은 세대를 많이 등용할 것으로 예상돼 향후 몇개월간 북한 정권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베넷 연구원은 “누군가가 두려움 때문에 김정은을 암살할 경우 이후 누구를 권력자로 세울지를 놓고 파벌간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남한으로 300만 명, 중국으로도 300만 명의 난민이 넘어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북한 급변 사태 대비는 제대로 안돼 있다는 것이 베넷 연구원의 지적이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통일이 자신들에게 좋다고 느끼도록 한국이 법적 준비를 해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하다”며 “그래서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북한 군부와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정원에 해당)가 통일에 저항해 싸울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대가는 엄청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급변사태 발생시 북한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통제에 대한 우려도 지적했다. “한·미 정부가 WMD를 어느 정도 통제하겠지만 충분치 않다. 사태가 발생하면 미군이 즉각 투입돼 북한 군이 WMD를 이동하거나 은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미군이 본토에서 한반도에 도착하려면 최소 몇주일이 걸린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런 문제 때문에 주한 미 2사단을 한·미연합사단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양국 당국이 검토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북한 급변 사태가 나면 중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개입하려 하겠지만 친중 정권까지 세우려 할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미·중이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급변 사태 가능성 등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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