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과학화’로 신예들 급성장 … 절대 강자 하나씩 사라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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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19면

2000년대 초반, 연말이면 국내 격투기 팬들은 TV 앞에 모였다. 일본 격투기 K-1과 프라이드가 매년 12월 31일 최대의 싸움판을 벌였다. ‘복싱과 유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질문에 그들은 답을 내놨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음지의 싸움을 두 단체는 양지로 끌어냈다.

종합격투기 춘추전국시대

 K-1은 펀치와 킥을 사용하는 입식 격투기 대회다. 씨름 선수 최홍만이 K-1에 진출해 정상급 선수들과 맞붙기도 했다. 종합격투기 프라이드는 누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실전 싸움에 더 가까운 경기였다. 유도 선수 추성훈이 프라이드에서 활약했다.

 프라이드 연말 이벤트는 2007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일본 후지 TV가 대회 중계를 취소하자 자금난에 빠진 것이다. 프라이드는 미국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대의 종합격투기 대회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에 흡수됐다. 현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K-1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제 격투기 팬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UFC를 본다. 1993년 미국에서 탄생한 UFC는 2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프라이드를 흡수해 미르코 크로캅(크로아티아)·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브라질)·마크 헌트(뉴질랜드)·알리스타 오브레임(영국) 등 K-1과 프라이드 헤비급 정상에 있었던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대부분 UFC에서 오래 싸워온 선수들을 이기지 못했다. UFC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임을 증명했다.

 UFC에 역사가 쌓이고, 뛰어난 선수들이 몰리면서 격투기는 과학화·체계화하고 있다. 선수별 장단점이 낱낱이 드러나고, 훈련부터 게임 플랜까지 정교하게 관리된다. 종합격투기가 스포츠 영역에 정착한 이상 누구의 독주도 쉽지 않아졌다. ‘격투기의 메이저리그’라는 별칭답게 UFC에선 무한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공격 루트가 단순한 스트라이커의 입지는 계속 좁아졌다. 유도·주짓수·가라테 등보다 레슬링이 종합격투기에 가장 유용하다는 것도 증명되고 있다. UFC는 연말이라고 해서 특별한 이벤트를 하지 않지만 29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UFC 대회가 열린다. 크리스 와이드먼(미국)과 앤더슨 실바(브라질)의 미들급(84㎏) 타이틀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9월 첫 대결에선 레슬링이 뛰어난 와이드먼이 펀치가 좋은 실바를 KO로 이겼다. 10차 방어전에 성공했고, 라이트헤비급(93㎏) 경기에서도 진 적이 없었던 ‘투신(鬪神·싸움의 신)’ 실바는 어이없이 무너졌고 4개월 만에 도전자로 리턴매치에 나선다.

 라이트헤비급의 챔피언 존 존스(미국)는 9월 레슬링 기반의 파이터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스웨덴)에게 고전하다 어렵게 판정승을 거뒀다. 헤비급(120㎏)의 스트라이커 주니어 도스 산토스(브라질)는 케인 벨라스케즈(미국)를 라이트훅으로 KO시키고 챔피언에 올랐으나 이후 두 차례 대결에서 모두 패했다. 케인 역시 대학 레슬링 챔피언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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