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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이미지에 먹칠한 복병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미지」 유신을 위해 전속 미용사까지 고용했던 「닉슨」이 최근 뜻밖의 복병을 만나 악전 고투중이다.
자칫하다가는 도청과 야간 주거 침입이라는 점잖지 못한 죄목의 배후 인물로 옭혀 들어가게 생긴 것이다. 올가미를 휘두르고 있는 쪽은 미 상원 특별조사위 및 「매스컴」의 혀와 철필들-. 어느 모로 보나 만만찮은 상대가 만만찮은 「증거」를 들고 덤빈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6월에 터졌다. 「닉슨」 타도의 총 지휘본부인 미 민주당 본부 「워터게이트」에 5명의 밤손님이 들었다가 잡힌 것이다.
한데 도둑들의 행색이 여느 밤손님과는 판이했다.
권총이나 「드라이버」 대신 정교한 전자 도청장치와 서류 복사기로 무장을 갖췄고 주머니에서는 현찰 6천「달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잔뜩 신경이 곤두 서 있는 판에 이와 같은 사건이 터졌으니 민주당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 배후를 가려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배후야 보나마나』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이런 경우에는 『침묵은 금』이 아니라 오히려 자살행위이기 마련. 「닉슨」 측에서는 『별난 도둑놈도 있는 모양』이라고 딴전을 부렸다.
하나 금방 명백한 증거가 나오는 바람에 「닉슨」측의 시치미떼기 작전은 혹만 붙인 격이 되고 말았다.
5명의 밤손님 가운데 2명이 「닉슨」 재선위원회의 「멤버」이자 전직 FBI(미 연방수사국) 요원임이 밝혀진 것이다.
낭패한 「닉슨」 측은 흙탕물이 더 이상 튀지 않도록 막기 위해 재선위원회의 책임자였던 「미첼」 전 법무장관을 갈았다.
기왕에 버린 몸이니까 혼자서 모두 뒤집어쓰고 용퇴시키자는 전략이었다.
「미첼」의 부인이자 「세기의 입심」인 「마더·미첼」이 『가정으로 돌아오겠느냐, 이혼하겠느냐』하고 「쇼」를 벌인 것은 바로 용퇴의 계기를 만들어 주려는 연극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닉슨」참모들이 짜낸 이 계획은 「밤손님 계획」 때와는 달리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닉슨」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는 않았다.
모처럼 좋은 싸움거리를 얻었다가 어이없게 시기를 놓쳐버린 민주당 측이 의회를 이용해서 물고 늘어지고 여기에 「닉슨」의 숙적(?)인 「매스컴」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측은 우선 상원 안에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한 후 관련자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였다.
이렇게 몇 달을 계속하자 차차 배후의 윤곽이 잡히는 듯한 징조가 보였다. 그리고 그 징조가 뚜렷해질수록 화살은 백악관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었다.
신이 난 「매스컴」들은 연일 주먹만한 활자로 제목을 달고 백악관의 고위참모들 이름을 내걸기 시작했다.
조사위원회의 청문회는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참석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술술 얘기를 흘려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백악관은 보이지 않는 괴물과 싸우게 된 셈이었다.
한데 이 단계에서 「닉슨」은 두 가지의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그레이」를 FBI총수로 임명하려고 덤빈 것과 백악관 막료들의 조사위 증언을 거부한 것이 그것이다.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에다 「그레그」의 FBI국장 임명동의를 요청한 것은 한마디로 『너무했다』는 게 중평.
그는 정치를 뱀 보듯 해야하는 FBI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닉슨」의 일이라면 제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돌봐왔기 때문이다.
FBI예산으로 전세기를 내어 선거지원 유세를 다닌 것은 그래도 약과.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중 부하가 백악관 주변을 건드리려 하자 이들을 지방근무로 내쫓았는가 하면 「닉슨」의 보좌관에게 사건수사기록을 열람시키기까지 했던 것이다.
약이 오른 민주당 의원들은 한사코 「그레이」 임명을 거부, 「닉슨」은 얻은 것도 없이 인심만 잃고 말았다.
「닉슨」이 백악관 참모들의 조사위 출석과 증언을 거부한 것도 구설수만 덧붙여줬다.
『삼권 분립의 정신과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라 출석 및 증언을 거부한다』고 하자 헌법학자·법조인들이 입을 모아서 『그런 것 없다』고 되받은 것이다.
게다가 조사위원장 「어빈」상원의원은 『끝까지 안나오겠다고 버티면 모두 체포해서라도 듣겠다』고 벼르고 신문은 신문대로 『켕기는 것이 없으면 왜 안 나오느냐』고 긁었다.
견딜 수 없게 된 「닉슨」은 서면 증언은 허락하겠다거니 「딘」 보좌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라면 좋다거니 했지만 모두 딱지를 맞았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심증」을 굳혀주는 결과만 빚은 것이다.
어쨌든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의 「이미지」에 이미 상당한 먹칠을 해놓았다. 그리고 문제가 눈사람처럼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큰 성과(?)를 거둘 공산도 짙다. <외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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