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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김영란·조배숙 등 배출 "졸업생 720명 중 30% 박사·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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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경기여고 63회 졸업생들이 19일 서울 장충동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송년모임에 참석해 당시 교지와 신문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63회 동창회장인 조윤희 서울바로크합주단 대표, 김영란 전 대법관, 노정혜 서울대 교수, 최양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김성룡 기자], [사진 경기여고 63회 동창회]

지난 19일 오후 6시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 19층 오키드룸. 진주목걸이와 브로치·스카프 등으로 멋을 낸 50대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쩜 하나도 안 변했네.”

 “여기 와보니 50대는 한창이라는 말이 맞아.”

 깔깔 웃음소리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한결같이 왼쪽 가슴에는 OO반 OOO라는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새학기 시작을 앞둔 여고생 교실 같은 들뜬 분위기. 경기여고 63회 졸업생 송년모임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경기여고를 상징하는 영문이니셜을 섞어 KG63이란 약칭으로 불렀다. 이들이 처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김영란 전 대법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조배숙 전 의원 등 ‘법조 트리오’가 유명세를 치르면서다. 서울대 법대 75학번 동기생인 이들은 각각 첫 여성 대법관(김영란), 첫 여성 법무부 장관(강금실), 첫 여성 검사(조배숙)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의도 정치권과 광화문 관가를 중심으로 KG63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고위 관료와 정치인 부인들 중 경기여고 63회 동창생이 많아 이를 고리로 남편들 간의 유대관계가 형성되고 있어서다.

 우선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낸 김무성 의원의 부인인 최양옥(피아니스트)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박진 전 의원의 부인인 조윤희 서울바로크합주단 대표가 KG63 출신이다. 김 의원과 박 전 의원은 2005년 여고 졸업 30주년 행사 때 ‘남편 합창단’ 일원으로 무대에 올라 ‘더 영 원스’ ‘토요일은 밤이 좋아’ 등을 열창하기도 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부인 현혜신(의사)씨와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의 부인 문수애(의사)씨도 63회 동기다. 특히 이성보 위원장은 앞서 권익위원장을 지낸 김영란 전 대법관과는 사법시험 동기여서 이래저래 KG63과 인연이 깊다.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 역시 63회 동기인 이옥배씨의 남편이다.

 이들은 1972년 경기여고에 입학했다. 동기생은 묘하게도 720명이다. 이 중 80명가량이 나온 이날 송년모임엔 반별 푯대가 세워진 10개 원탁에 한 반 또는 두 반씩 나눠 모여 앉았다. 경기여고는 여성 인재를 많이 배출한 ‘여걸 사관학교’다. 그중에서도 63회는 동창회에서 주는 ‘자랑스런 경기인상’과 ‘영매상(모교 이름을 빛낸 동문에게 주는 상)’을 휩쓸 정도로 막강하다. 게다가 놀 때는 화끈하게 노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날도 ‘무당 춤꾼’ 김경란씨가 친구들을 위해 한국 전통춤인 교방춤을 선보였고, 흥이 오르자 모두가 빨강·노랑·초록색 장갑을 낀 채 최신 유행곡인 크레용팝의 ‘빠빠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63회 정기모임은 연말 송년회와 6월 총회 두 번이다. 하지만 이들이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는 이유는 각종 소모임과 ‘번개(즉흥적 모임)’가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춤 동호회 ‘댄스플러스’, 등산 동호회 ‘산타루치아(산을 타며 루마티스와 치매를 예방하려는 아줌마들의 모임)’, 골프 동호회 ‘숙녀회’ 등 육체적인 활동부터 크리스천 모임 ‘신우회’, 맛집 탐방 번개모임인 ‘즐먹회(즐겁게 먹는 모임)’까지 다양하다.

졸업 30주년 기념식 계기로 모임 활성화

1975년 졸업앨범에 실린 각 반의 반장단 모습.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 첫째), 노정혜 서울대 교수(앞줄 왼쪽 다섯째)의 모습이 보인다. 7반 반장이었던 강 전 장관은 문과(1~7반)에서, 8반 반장을 지낸 노 교수는 이과(8~12반)에서 1, 2등을 다퉜다. [김성룡 기자], [사진 경기여고 63회 동창회]

 특히 불우이웃 후원회 ‘옹달샘(옹기종기 모여 앉아 달콤한 사랑을 샘물처럼 흐르게 하라)’의 활동이 활발하다. 2006년 동창 100여 명이 단체로 미국과 페루 여행을 다녀온 뒤 비행기삯을 할인받아 마련한 종잣돈 1000만원으로 후원회를 만들었다. 자발적 참여로 2년도 안 돼 기금이 다섯 배나 불었고, 정기 모임 때마다 소규모 자선바자를 열어 마련한 기금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어린이재단에서 추천하는 4명의 소년·소녀 가장을 포함해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6명에게 매달 용돈을 주는 일부터 했다고 한다. 그 후 성폭력 피해 관련 1차 치료가 끝나고 후속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 가난 등으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이 등으로 후원 대상을 확대해오고 있다.

 모임이 활성화된 계기는 ‘졸업 30주년 기념식’이었다. 2005년 6월 열린 기념행사엔 졸업생 720명의 3분의 1이 넘는 25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재 63회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조윤희씨는 “30주년 모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근황을 알게 됐고, 지속적인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며 “그 후로 매년 6월에 총회를 열고 2년 임기의 회장을 선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63회 졸업생 중엔 정치권은 물론 정부·학계·문화예술계·의학계 등에서 걸출한 인사가 많이 나왔다. 특히 학계 인사가 많아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동창이 100명이 넘는다. 국내 ‘생명과학계 대모’라 불리는 노정혜 서울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서울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세계 처음으로 추출된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교수가 드물던 시절 서울대 자연대 교수로 부임해 지금까지 미생물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2011년 제13회 한국과학상, 지난해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주는 ‘비추미여성대상’ 별리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자랑스런 경기인상도 받게 됐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을 검증하는 서울대 조사위원회 대변인을 맡았을 때 차분한 어조와 절제된 발언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노 교수는 “교수 정년이 65세인데 이제 8년 남았다”며 “그전까지는 모임에 살짝살짝 나오고 이후엔 자주 참석해 신나게 놀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신학자 정현경 교수도 화제의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아시아 여성 최초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의 종신교수이자 달라이 라마 등이 주요 위원으로 있는 종교간세계평화위원회의 최초 아시아계 여성 위원이다. 2006년 7월부터 1년 동안 이슬람 18개국을 순례하면서 그 기간에 만난 이슬람 여성 300여 명의 눈으로 바라본 이슬람 세계를 책으로 써내기도 했다.

 유학파들의 활약은 지금도 왕성하다. 여성 최초로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대표적인 중견 여성 경제학자로 재정 및 금융 분야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이 교수는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63회 졸업생 중 3분의 1 정도가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거나 교수직을 역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윤용 이화여대 약학대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국내 생명약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07년에는 암 치료 신약을 개발해 1년에 한두 명에게 주는 유니베라 생명약학 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영재교육 전문가로 활약 중인 조석희 교수 역시 63회 ‘히든 에이스’다. 조 교수는 86년부터 20년 동안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센터 소장을 지냈고 2005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미국 뉴욕 세인트존스대(st. john’s university) 종신교수와 충북 괴산 중원대 석좌교수를 겸하고 있다.

"남학생과 여행” 학교 발칵 뒤집힌 적도

① 경기여고 정동교사가 있던 덕수궁 선원전 터. 당시엔 전교생이 수영대회를 할 만큼 커다란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일부 학생은 당시 ‘귀족 스포츠’라 불리던 스케이트를 배우기도 했다. ② 경기여고 교지 ‘매원(梅苑)’의 1973년호. ③ ‘지덕겸비(지혜와 도덕성을 겸비하라는 뜻)’. 경기여고 신문에 실린 육영수 여사의 친필 휘호.

 미국에 진출해 활약하는 학계 동문으로는 유영미 럿거스대 언어학 교수와 박계영 UCLA 인류학 교수가 꼽힌다. 특히 박 교수는 91년 LA 흑인폭동 때 한국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 치유에 앞장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밖에 이영훈 여의도 순복음교회 담임목사의 부인 백인자(전 한세대 교수)씨,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어머니 이명준(미국 템플대 교수)씨, 배우 전지현씨의 시어머니이자 이영희 한복디자이너의 딸인 이정우(패션디자이너)씨도 63회 졸업생이다.

 강금실 전 장관과 김영란 전 대법관, 조배숙 전 의원은 여고 시절 1, 2등을 다투던 사이다. 한번도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지만 남학생이 절대 다수이던 시절 서울대 법대에 나란히 입학한 데다 사법시험도 차례로 패스했다.

 강 전 장관에 대해 동기생들은 “당차고 강직한 성격이었다”고 기억한다. 사시 23회로 법조계에 진출한 뒤 줄곧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서울지역 첫 여성 형사단독판사, 첫 여성 법무법인 대표, 첫 여성 민변 부회장 등을 거친 데 이어 첫 여성 법무부 장관 타이틀까지 얻었다. 연수원 기수로는 김영란 전 대법관이 가장 선배다. 김 전 대법관이 11기, 조 전 의원이 12기, 강 전 장관이 13기다. 김 전 대법관은 대학 4학년 때 사시에 합격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쳤다. 2004년 서열과 기수 관행을 뛰어넘어 첫 여성 대법관이 됐고 이명박정부 땐 권익위원장에도 임명됐지만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지난 대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그는 사법연수생 시절 검사 시보이던 7세 연상의 강 변호사와 만나 82년 결혼했는데 최초의 판검사 부부로 화제를 모으는 바람에 결혼식 장면이 방송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현재는 서강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 전 대법관은 “당시만 해도 한 여고에서 법조인을 세 명이나 배출한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3선 의원(16~18대) 출신인 조배숙 전 의원은 판사·검사에 변호사까지 3륜을 모두 거친 화려한 이력으로 동기생들 중 일찌감치 정계에 진출했다. 그는 82년 우리나라 첫 여성 검사의 기록을 세웠고 이후 판사로 전관해 서울고법에 재직하기도 했다. 이후 백지연씨 친자 소송, 박지만씨 마약 사건 변호 등 굵직한 사건을 맡아 변호사로도 명성을 날렸다. 19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전북도지사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경기여고 63회가 잘나가는 비결이 뭘까. 이들은 “첫 중학교 평준화 세대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KT 여성 최초 임원인 조화준 KT캐피탈 전무는 “우리 직전까지만 해도 ‘경기여중-경기여고’는 불문율 같은 진학 코스였다. 하지만 우리 때부터 중학교는 은행알 굴려 추첨으로 들어가는 대신,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더 치열하게 치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날고 기던’ 전국의 여중생들 중에서 엄선된 학생들로 채워졌다는 얘기다. 조윤희 동창회장은 “선배들이 잘 다듬어진 돌이라면 우린 거친 공깃돌 같은 존재였다”며 “학교에서 선배들과 비교되는 일이 잦다 보니 더욱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실 교수는 “중학교 때 ‘한 가닥’ 하던 애들이 다 모였기 때문에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등수가 오르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경쟁은 치열했지만 학교는 학업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방과후 클럽 활동 참여를 독려했다. 일주일 중 하루의 반나절은 각자 택한 취미 활동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한다. 미술반 활동을 했던 이인실 교수는 “다들 공부는 기본적으로 잘하니까 나는 공부 외에 다른 활동을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그림을 그리는 일이 단순한 취미활동 이상이었다”고 했다. 당시 경기여고는 교내에 수영장이 있었다. 조배숙 전 의원은 “체육 선생님은 기본적인 수영이론을 가르친 다음엔 ‘오늘은 최소한 100m는 찍고 돌아오라’는 등 목표의식을 갖게 하는 훈련도 시켰다”고 기억했다.

 이들에게 잊히지 않는 여고 시절의 기억은 뭘까. 대부분 “엄격하게 단속했던 이성교제였다”고 말한다. 남인복 커뮤니케이션북스 총괄편집이사는 “당시 문학반으로 ‘매원 문학의 낮’이라는 행사를 주도했는데 교장선생님이 남학생들이 올까 봐 행사 자체를 못하게 하려고 해서 울며불며 매달린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여름방학 기간에 남학생들과 부산 여행을 갔던 사실이 알려져 학교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을 장려하는 학풍이 영향력 있는 여걸을 많이 배출하게 된 배경이 됐다는 데는 같은 생각이었다.

글=김경희·하선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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