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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미 포로 월맹의 잔학상 폭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뉴요크 31일 AP합동】월맹에 억류되었던 최종 미 전쟁포로 진이 지난달 29일 「필리핀」「클라크」공군기지에 도착, 「인도차이나」에서 사로잡았던 미군포로가 전원 석방됨으로써 귀환 포로들은 이제 월맹에서 당했던 고문과 잔학상에 대해 차차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귀환포로들은 최종 포로가 완전 석방될 때까지 공산주의자 수중에서 당했던 고초에 대해 입을 다물도록 지시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포로가 전원 석방된 하루 후인 30일 몇몇 귀환포로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차라리 공산주의자들이 나를 죽여주었으면 하는 생각조차 갖곤 했다』고 실토할 정도의 모진 고문 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6년 이상이나 포로생활을 했던 「케네드·노드」공군 중령은 전깃줄에 묶여 발로 채고 여기저기 구타당했으며 소총개머리판으로 얻어맞을 땐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말하고 견디다 못해 포로처우에 관한 「제네바」협정 「카드」를 제시하자 그들은 이를 찢어 버렸다고 말했다.
1966년6월17일 격추 당한 「폴·E·갈란티」해군 소령은 그가 지상에 낙하하자 약50명의 월맹 농부들이 그를 포위하는 바람에 자결하려던 결심을 버리고 투항했다고 말하고 후에 밧줄에 묶여 계속고문을 당했으며 끝내는 거짓 내용으로 심문자의 질문에 대답하곤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후 「하노이」시로 끌려가 거리를 행진토록 강요당했으며 마침 포로행진 후미에서 뒤따라가던 그는 장사진을 이룬 구경꾼들로부터 『개새끼 개새끼』란 욕을 들으며 사타구니를 발로 채곤 했다고 말했다.
「후에」시 『미국의 소리』방송 간부로 내년1월31일의 「베트콩」구정공세 때 민간인으로 사로 잡혔던 「찰즈·E·월리스」씨는 『전황』에 따라 그에 대한 처우도 달라졌다』고 말하고 공산주의자들이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 때는 그에 대한 처우도 호전되었으며 전세가 그들에게 불리할 때는 대우도 악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콩」과 월맹군 양쪽에서 포로생활을 맛보았는데 사실상 어느 쪽이 더욱 잔혹하게 다루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전하면서 그를 다툰 공산주의자들 중에는 간혹 친절하고도 인도적 호의를 베푼 자도 있었다고 밝혔다.
67년9월17일 사로잡힌 「조지·로버트·홀」공군 중령은 포로생활 중 터득한 것이 하나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의지력과 결심만 굳으면 어떤 고난도 견디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도로생활에서 겪은 온갖 굴욕적인 처사에도 완강히 저항했었음을 암시했다.
역시 67년9월 격추 당한 「보비·R·버글레이」공군 중령은 지상에 낙하했을 때 몰려온 월맹농부들이 그를 목매달아 죽이려하는 것을 한 연로한 농부가 이를 가까스로 만류위기를 모면했다고 말하고 29일 밤의 「닉슨」대통령의 전국 중계방송 연설을 들을 때는 모든 포로들을 떳떳이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준 대통령의 노고에 감격, 눈물까지 흘렸다고 말했다.
65년7윌 격추 당하여 근8년간이나 포로생활을 한 「리처드·P·카이언」공군 중령은 월맹군 경비병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포로들은 고무 「타이어」를 찢어 만든 예리한 회초리로 매맞기가 일쑤였다고 말하고 경비병들은 5분마다 감방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아 포로들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으면 당장 들어와 인사를 할때까지 채찍질을 가했다고 말했다.
경비병들은 포로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파탄이날 정도로 온갖 굴욕적인 것을 자행했다고 그는 분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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