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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티우 체제와 정치의 향방-특파원이 마지막 본 진통의 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오늘의 월남은 표면상 1백여만 명 군부의 절대지지를 받고있는 「티우」대통령과 「키엠」수상의 두 정치거목을 기반으로 한 체제 밑에서 전진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있다. 기자의 특파원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최대 정치적 행사는 71년l0월 실시된 월남특유의 대통령 선거라고 하겠다.
여러가지의미로 금년의 대통령 선거는 좀처럼 기자의 뇌리에서 사라질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벤트였다.

<단일후보로 끝내 강행>
67년의 대통령선거 전만 해도 당시의 강자이던 「구엔·카오·키」의 그늘에 있던 「티우」가 능란한 정치적 술수로 67년 선거에선 「키」·「티우」「팀」이 아니라 「티우」·「키」 「티키트」를 짜는데 성공했다.
71년에는 「티우」의 우위가 움직일 수 없는 형세아래서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그러나「티우」의 「라이벌」이던 「키」와 「빅·민」의 애칭으로 불린 「두옹·반·민」장군은 까다로운 선거법에 묶여 후보등록조차도 봉쇄되고 월남 선거사상 유례가 없는 단일후보가 독주하는 기형 선거가 돼버렸다. 결과는 보나마나 「티우」의 압승이었다.
「키」「빅·민」의 공동전선은 동상이몽으로 초반전에서 좌초하고 말았으며 천문학적 군경원으로 월남을 지원해 주고 있는 미국의 외교명수 「벙커」주월 대사의 끈덕진 「티우」설득도 무위로 끝나고 단일후보의 선거가 강행됐었다.
독립관이 자리 잡은 「사이공」의 「튼뉴아트」가(통일로)를 빈번히 왕래하던 80에 가까운 은발의 「벙커」대사의 모습을 시민들은 자주 볼 수 있었다. 71년 선거를 치른 후의 「티우」체제는 날이 갈수록 강화 일로를 걸었다.
정치의 패배자 「키」와 「빅·민」이 재기를 노리며 「테니스」를 통해 발산(?)하고 있는 듯한 표석을 기자도 「프랑스」인들이 경영하는 초현대적 「스포츠·센터」에서 간혹 훔쳐들 수 있었다.
일선 취재차 성청·시청·군청에 들렸을 때 성장·시장을 비롯하여 각급 지방행정기관의 책임자 또는 간부들이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로 구성돼 있는 것을 목도하고 월남의 정치현실이 어디까지와 있느냐를 직감할 수 있었다.

<불교세력도 크게 약화>
72년 중부월남의 「몬타냐」족이 많이 살고 있는 조그마한 「푸본」성을 방문했을 때 야전복 차림의 중량을 성장으로 하고, 차를 나르며 시중을 드는 사람들까지도 군사 색으로 구성돼 있는 것을 눈여겨보고 이것이 월남의 특유한 정치·군사적 실정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지방행정을 요리하는 군복의 관리들은 말단행정기구까지 철저한 친 티우 파로 짜여져 있다.
기자는 2년3개월 동안 불교도나 학생들에 의한 데모다운 데모를 사이공에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지난날 숱한 군부정권의 운명을 한 손아귀에 쥐고 흔들던 호전적 「안쾅 파 불교세력과 이와 연합한 과격학생 세력이 이렇다할 힘을 쓸 수 없을 만큼 분열, 거세된 여파인 것으로 해석됐다.
키-빅·민의 후보등록이 거부됐을 때 함석지붕으로 된 초라한 하원의사당 빌딩 앞의 투도(자유)가 한 모퉁이에서 키 계열의 상이 군들이 분신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몇 건 있었을 뿐이다.
뼈만 앙상한 체구를 드러내놓고 휘발유 통을 전신에 붓고 성냥을 그어대려는 찰나 경찰에 연행되는 한30대의 상이군인을 목격하고 섬뜩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기자가 겪은 또 하나의 큰 정치적 흐름은 「마리」협정에 규정된 총선에 대비한 「티우」 정도의 전초전이었다.

<민주당 세력확장 피치>
현재 「마리」에서 월남정부와 「베트콩」대표간에 총선을 관장할 3파 민족화해 단결위원회 구성을 위한 정치회담이 열리고 있다. 티우는 총선에 대비, 월남의 모든 정치세력을 규합할 목적으로 요란하게 단추(민주)당의 출범을 선전했다. 말할 것도 없이 「키」·「빅·민」을 추종하는 정치세력과 「안쾅」파 세력은 이에 가담하진 않았으나 거의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추」당은 총선에서 공산 측의 단일정치세력인 「베트콩」과 대결하는 월남의 핵심적 정치면이 되려고 전국도처에서 대세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월남의 다수의 정치인들은 「티우」의 정치 마력에 휘말려서거나 그렇지 않으면 「티우」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라기보다는 공산 측이 승리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단추」당에 호흡을 같이하고있는 실정이다.

<총선 결과 승복도 의문>
그러나 「마리」정치회담이 초반전부터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 이 협상이 3파 위원회 구성까지 무난히 끌고 갈 수 있느냐도 의문이 크다.
설사 그 단배의 작업까지 순조롭다해도 과연 「파리」휴전협정대로 총선이 실시될 것이냐, 또한 총선이 실현되는 경우 패자가 선거결과에 승복할 것이냐는 등 앞으로 월남의 정치적 장래에는 숱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다수의 관측통들은 「파리」정치회담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자면 미국을 비롯하여 소련·중공의 설득·중재가 큰 비중을 차지해야할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있다.

<「티우」수완 여당도 인정>
「티우」의 정치적 신통력이 전후의 총선거에서 어떻게 발휘될 것인가는 지켜볼 문제지만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군부가 티우 체제를 계속 떠받들고 있는한 월남에서 티우의 만추 당에 일전을 겨를 만한 실력을 갖출 정도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야당의 출현 가능성은 희박한 듯 하다. 「키」나 「빅·민」도 「티우」의 정치적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시민에게 크게「어필」할 수 있는 정당구호를 공공연히 내세울 자신은 갖지 못하고 우회적 방법으로 미온적인 경망조직과 제휴를 위해 정치동면에서 겨우 깨어 나려하고 있을 뿐이다.
총선 후의 이 나라 정부의 형태나 정권담당자가 누가 될지 쉽게 점칠 수는 없으나 「티우」가 실각하거나 거세될 징후는 현재로서는 별로 없다하겠다.
장기적 전망은 지금 누구도 내릴 수 없으나 적어도 앞으로 수년간 「티우」의 정치적 기반은 지난 2년여에 비해 큰 변동이 없을 것은 분명하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72년3월의 월맹군 춘계 대공세 후 국회에서 얻은 비상대권을 십분 발휘하여 짧은 6개월의 비상대권 기간 중 국회에서라면 수년 걸려야 처리할 수 있는 수백 건의 입법을 한 티우의 정치적 수완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야당도 시인하고 있다. 【신상갑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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