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계적인 유동성 잔치 마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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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한 것은 세계경제 흐름이 변곡점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비록 축소 규모가 월 100억 달러에 그치고 제로 수준의 초저금리는 계속 유지하기로 했지만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5년여 만에 통화정책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게 중요하다. 돌아보면 무제한 양적완화는 매우 비정상적인 극약처방이었다. 경제가 안정을 되찾는 대로 통화정책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다행히 미 연준은 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서서히 출구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경제연구기관들은 과거처럼 한꺼번에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 외환·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상수지가 흑자를 유지하고, 외환보유액이 3450억 달러에 이르는 데다 미국·유럽 등에 비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상대적으로 괜찮기 때문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축소되면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가계부채와 나랏빚이다. 우리 경제주체들은 오랫동안 미국의 양적완화에 젖어 있었다. 저금리 바람을 타고 가계부채가 1000조원, 국가부채와 공공기관의 채무도 1000조원으로 팽창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되면 국내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빚을 내 이자를 갚는 악순환에 빠질지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전 세계적인 유동성 잔치는 끝났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진 만큼 자본 유출입의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맞춰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 가계와 정부는 부채 축소에 나서고, 부실기업의 구조조정도 서둘러야 한다. 물론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 지난 9월에도 미국의 출구전략 조짐으로 이머징 국가들은 경제위기에 시달렸지만 한국 경제는 반사이익을 누린 바 있다. 앞으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우리 하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