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적 무역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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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 경제질서는 「달러」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보호주의·지역주의적 색채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닉슨」미국대통령은 22일 일본과 EC제국의 관세 및 무역정책을 비난하면서 미국이 새로운 경쟁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무역법을 제정해야 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5년간, 행정부가 관세율을 정세변화에 따라서 적절히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함으로써 미국상품에 차별을 가하는 국가에 보복조치를 할 수 없게 하여야 하겠다는 것이 그 취지이다. 이러한 입법은 새로운 국제통화 질서와 통상 질서를 형성시킴에 있어 미국정부의 협상 교섭력을 강화하려는데 그 근본 취지가 있는 것이나, 협상과정에서 파생되는 파동의 성격에 따라서는 실지로 발동될 여지도 충분히 있다.
이「닉슨」선언에 대해서 일본측이 즉각 대응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더라도 미국의 강경조치가 일본 및 EC의 보복조치를 유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일 이러한 상호 보복조치가 야기된다면 이른바 경쟁적 평가절하와 보복가치를 적용이라는 악순환 과정이 불가피해져 제2차대전 전의 보호주의·지역주의가 재현 될 염려조차 없지 않다.
물론 제2차대전 전의 보호주의·지역주의가 전쟁으로 발전되어 인류에게 막대한 희생을 강요했던 점을 반성해서 「유엔」의 탄생과 더불어 IMF·GATT·IBRD등을 설립하여 평화로운 가운데 자유로운 무역을 하는 것이 상호이익임을 행동으로 증명했던 것이므로 아무리 상황이 악화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인류의 양식에 희망을 걸 수 있으리라고는 믿는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서 거듭돼 온 통화파동과 그 수습과정에서 보여주는 각국의 자세로 보아, 당분간 협상과 보호주의는 평행선을 유지하면서 진전할 가능성이 크다. 파국을 회피하기 위한 협상은 계속하되 각기 보호주의적 색채를 심화시킬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처럼 세계 경제질서가 전환기적인 양상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경제논리의 당연한 귀결로 개발도상국은 가장 큰 피해자로 등장하여 특혜와 원조에 의존하면서 성장을 도모하던 60년대의 꿈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주요 선진국의 양식이 세계경제의 파국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안일하게 60년대의 국제 경제관에 안주할 수는 없다.
우선 「닉슨」선언에서 분명히 예시된 것처럼 한국경제는 이미 특혜와 원조가 필요없는 경제로서 인정되어가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하나의 무역경쟁 대상국으로서 취급되어 가고 있으며,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EC·일본에서도 같은 대우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수출「드라이브」정책과 고율차관으로 고도성장을 지속시키겠다는 우리의 기본전략은 이제 중대한 여건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의 수출구조가 파동의 핵심인 미국 및 일본 시장에 70%나 의존하고 있는데다가 그러한 구조를 단시일 안에 시정시킬 방법도 찾기 어려운 것이라면, 우리의 수출추세는 앞으로 결코 낙관만 할 수 없다. 수출계획에 장기적인 차질요인이 있다면 우리의 정책기조 자체가 흔들리게 되리라는 점에서 세계경제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하여 불측의 사태에 대비해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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