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 생각마라, 나이 50은 멈추긴 젊은 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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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케이클라비스 구재상 대표의 집무실. 그는 “아직 성공을 말하기엔 이르지만 만약 한번 더 성공한다면 사회에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고 물었더니 “고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진 회사를 만드는 것, 나는 물론 직원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은퇴란 단어에 걸맞은 인물을 떠올렸을 때 문득 이 사람 생각이 났다. 40대에 이미 국내 유수 금융회사를 일궈내 부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자기가 만든 투자자문사 대표를 하고 있는 엄연히 현직인데 왜 그가 떠올랐을까. 아마 그가 창업공신으로서 젊은 날을 온전히 바쳤던 직장을 떠나면서 비록 짧으나마(7개월) 은퇴자로서의 생활을 해봤고, 지금은 최고의 월급쟁이에서 오너로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난해 미래에셋에서 나와 케이클라비스(KClavis) 투자자문을 설립한 구재상 대표를 만나 나이 50을 눈앞에 둔 지금 그가 겪은 은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케이클라비스의 케이(K)는 한국(Korea), 클라비스는 라틴어로 열쇠를 뜻한다. 한국의 대표 금융회사로서 투자자들에게 성공의 열쇠를 쥐어주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여의도 증권가 한복판 한진해운 건물 12층에 있는 그의 33㎡(10평) 남짓한 집무실 안엔 기다란 12인용 회의용 탁자가 있었다.

 “누추합니다. 소파도 없어요. 여기 앉아서 얘기하죠.”

 구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창가 쪽 의자를 권했다. 솔직히 전혀 누추하지 않았다. 6개월도 안 된 새 사무실답게 모든 게 깔끔하고 정갈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자기 손으로 국내 증시 자금만 50조원을 굴리던 시절, 미래에셋 부회장실은 이보다 훨씬 크고 더 번듯했을 테니까. 워낙 큰물에서 놀던 사람이라 그렇지 지금 그가 운용하는 5000억원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뭐, 모든 건 상대적이니까. 에둘러 말할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미래에셋을 나올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혹시 후회는 안 하느냐고. 다음은 일문일답.

● 나이 50이 안 돼서 벌써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무슨 생각으로 나왔나.

 “1996년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 시절 회사 선배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구 대표가 동원증권의 전신인 한신증권 사원 시절 같은 주식부 과장이 박 회장이었다)으로부터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미래에셋을 만들었다. 솔직히 그때도 선뜻 응하기 어려웠다. 새로운 길은 모든 게 불확실한 게 아니냐. 나름 쌓아놓은 걸 다 버리고 가야 하니. 더욱이 워낙 안 되던 점포를 물려받아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 인정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 부회장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는 그때보다 훨씬 더 고민이 컸다. 나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불과 30대 초반이니 설령 뭔가 엇나가도 앞으로 인생에 여러 기회가 있을 수 있지만 이젠 과히 젊지 않은 나이니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을, 더 오래 하고 싶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투자고, 내가 회사를 만들면 그걸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

● ‘오래’라니. 설마 죽을 때까지.

 “투자회사라는 게 고객 돈 굴리는 일 아니냐. 잘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는 게 옳다고 본다. 건강관리만 잘 한다면 앞으로 15~20년은 할 수 있지 않을까.”

● 정말 길게 보는 것 같다. 펀드매니저는 마흔만 넘어도 감이 떨어진다고들 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 외국 투자업계 쪽엔 나이 든 사람이 꽤 많다. 물론 젊고 능력 있는 사람의 강점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다 경험을 토대로 한 직관이 더해지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낼 거라 본다. 단 건강관리는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미래에셋을 나와서 케이클라비스를 세우기까지 7개월 쉬었다.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미래에셋을 나올 때 대학 선배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 많은 주변 분이 딱 1년쯤 쉬라고들 하더라. 돌이켜보니 미래에셋에서 15년 근무하면서 제대로 휴가를 쓴 게 합해서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됐다. 특히 홍콩과 서울을 반반씩 오가며 지내던 2009년엔 한 해 내내 토·일요일 포함해서 딱 3일 쉬었다.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제야 이 업이 힘들게 보였다. 늘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하고 일요일도 없으니. 7개월 쉬면서 혼자 유럽 여행도 가고,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장도 봤다.”

● 1년에 딱 3일이라니. 집에서 그걸 이해해주나.

 “집사람은 신혼 때부터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냥 그런 줄 알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좋은 아빠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후배들한테는 늘 얘기한다. 애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라고. 시간은 내자고 들면 다 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그때는 내가 아빠 경험이 없어서 그걸 몰랐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지금 애들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많이 놀아줄 것 같다. 또 도시가 아니라 시골생활을 좀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내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정서적으로 그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걸 못해준 게 아쉽다.”

● 둘째 아들이 중국 유학 중이다.

 “사실 2009년엔 절반은 서울, 나머지 절반은 홍콩에서 살았다. 그때 애들을 홍콩에서 학교 보냈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애들이 원치 않았다. 그러다 2년 전 갑자기 중국으로 유학 보내달라고 며칠을 조르더라. 스스로를 바꿔보겠다나. 원래 역사·정치 분야에 관심이 많은 데다 언론에서 G2(세계 2강) 얘기가 많이 나오니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중학교 때부터 중국어를 조금씩 배우긴 했지만 유학 간다고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하더라. 국제학교에 다니다 보니 수업은 영어, 친구랑은 중국어·영어를 섞어 써야 하는데 다행히 잘 적응을 하는 것 같다.”

● 보통 큰애가 유학 가면 동생이 따라서 보내달라고 하는데, 동생만 유학 가 있는 게 특이하다.

 “둘 다 본인 선택에 따른 거다. 내가 뭘 강요한 적이 없다. 유학을 워낙 많이들 가고 나도 아들 하나를 유학 보냈지만 난 유학이 특별히 더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대학을 선택할 때 더 큰 목표는 결국 어떤 직업을 갖느냐다. 결국 본인이 하고 싶고 잘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걸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 사춘기 때 부모와 사이가 틀어지는 애들이 많다. 사이가 괜찮은지.

 “아~. 자식 키우기 참 힘들다. 우리 애들도 사춘기 때 많이 부딪혔다. 예컨대 큰애는 중1 때 사춘기가 왔는데 반항하고 공부 안 하고 말 안 하고,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겪었다. 돌이켜보니 사춘기를 심하게 앓으면 외국에서 공부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혼자 나가 있으면 생각이 많이 달라지더라. 한 보름 전쯤 둘째가 전화해서는 막 우는 거다. 아무리 잘 지낸다 해도 향수병이 온 거지. 우니까 사랑스럽더라.”

● 자식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이면 칭찬을 많이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주변에서 보면 분명 공부가 다는 아니다. 다만 부모니까 학벌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반이 됐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정말 성공하려면 독립적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도 대학 이후로 그랬다. 큰애부터 그렇게 해볼 생각이다. 홀로서기가 중요하다. 다른 건 몰라도 자기가 자기 삶을 개척한다는 독립심은 꼭 키워주고 싶다.”

● 은퇴 얘기를 다시 해보자. 7개월 쉬면서 뭐가 가장 불편하던가.

 “불편할 때마다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 홀로서기 하는 게 훨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더 먹어서 나왔으면 더 많이 불편하지 않았겠나. 미래에셋 시절 비서가 하던 일정관리, 연락처 관리, 이제는 내가 다 한다. 지금은 아이패드로 일정관리하고 약속 생기면 바로바로 스마트폰에 입력한다. 전에는 이런 기기들을 전혀 못 다뤘다. 회사를 처음 나오니 일정관리가 안 돼서 한동안 애를 먹기도 했다. 약속을 중복해서 잡아 혼나기도 하고. 이게 참 중요한 거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다른 건 괜찮다. 은퇴하면 내려놓기를 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말이다.”

●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것 같다. 보통 은퇴하면 경제적 압박을 심하게 받는다. 또 뭘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맞다. 솔직히 그들보다 절박함 같은 건 덜했을 것 같다. 또 지금은 이곳을 떠나지만 언제가 내 일을 시작한다 생각했기에 심리적 압박은 안 느꼈다. 게다가 했던 일을 다시 하는 거라 특별한 준비도 필요 없었고. 은퇴는 2012년 11월에 했지만 그러기까지 1년 이상 걸렸다. 그만두는 순간까지 자연스럽게 넘겨줘야 할 일 넘기고, 정리할 일은 정리했다는 거다.”

● 비슷한 또래에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나이 50은 멈추기엔 너무 젊은 나이다. 절대로 늦었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늘 마음가짐을 ‘늦었다’가 아니라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먹어야 한다. 평균수명을 비롯해 뭐든지 다 길어지고 있지 않나. 이젠 내 나이 즈음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 성공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거다. 창업을 왜 젊은이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나이든 사람이 창업할 때도 재정적 지원 같은 걸 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경험을 갖고 만드는 회사이니만큼 사회적 부가가치가 남다를 텐데. 참, 이 얘기를 꼭 써달라. 만약 은퇴하고 창업을 준비한다면 이름부터 고민하라고. 이름 정하는 일,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글=안혜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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