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회의의 전철 또 밟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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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월남 휴전을 보장할 12개국 회의가 26일 「파리」에서 개최됨으로써 휴전조약이 규정한 모든 기구가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이 회의에는 월남·「베트콩」·미국·월맹 등 4개 당사국과 국제 감시위원단에 참가하고 있는 「캐나다」·「인도네시아」·「헝가리」· 「폴란드」 4개국 및 54년 「제네바」회의 참가국인 중공·소련·영국·「프랑스」 외상과 「발트하임」 「유엔」사무총장이 참석하게된다.
2자 군사감시 위원단, 4자 군사감시위원단, 국제 감시위원단 등 4개의 휴전감시기구에 대해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최고 중재기구로 되어 있는 이 회의의 기능에 대해 휴전조약 19조는 ⓛ조인된 협정을 확인하고 ②휴전과 월남 평화유지 ③월남국민의 기본적 국민권리의 존중 및 ④월남국민의 자결권 보장이라고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 회의가 어떤 방법으로 이와 같은 기능을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키신저」보좌관도 휴전협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다만 이 회의가 『상호간에 합의된 제 위원회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모호하게만 설명했다.
아마 그러한 모호성은 「파리」회의의 역할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하지 않은 데서 온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회의에서 실무급의 휴전 중재기구가 출산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제회의 자체의 협의와 월남 현지의 사태발전에 좌우 될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임무를 협정 속에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휴전협정에 규정된 미군 철수·미군기지 해체·포로석방·휴전 엄수 등 군사면과 「사이공」및 「베트콩」간의 정치접촉 및 민족화해협의회 구성 등 정치문제의 합의에 대해 보고를 받고 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 기능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회의는 몇 가지 면에서 54년 「제네바」회의보다는 「인도차이나」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소지를 갖고 있다.
54년 「제네바」 회의가 외부로부터 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 협정을 지키게 하기 위해 구성되었고 처음부터 월남과 미국 측이 이에 유보 내지는 반발하는 상황에서 계획 된데 반해 이번 회의는 분쟁의 실질적인 당사국인 미국과 월맹의 주도로 소집된다. 분쟁 당사국의 이와 같은 입장은 「파리」회의의 진행을 실질적으로 돕게 될 것이다.
이밖에도 이번 회의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여건들은 54년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54년에는 「베를린」·중동·한국 등 분쟁지역을 두고 동서간에 서로 군사적 견제활동이 활발했던 때였다. 하나의 분쟁지가 현상 고정될 내적 조건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미·중공, 미·소간에 기본적 화해가 이루어져 있고 그러한 국제적 분위기가 음양으로 군소 국간에도 가해져 화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은 여건은 이번 회의가 강대국간의 협정이 국지분쟁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주는 「모델」로 지칭되고 있는 54년 「제네바」회의와는 근본적으로 구별해 준다. 또 72년 중에 실시된 「닉슨」의 북경 및 「모스크바」방문이라든가, 최근 「키신저」 의 북경 5차 방문으로 급속히 진전된 미·중공 관계, 그리고 미·월맹간의 합동 경제위원회설치 등 다변적 외교접촉은 이번 「파리」회의의 성과를 실질적으로 보완해 놓았다.
한가지 문제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정면충돌하고 있는 중공과 소련이 「인도차이나」라는 상호 관련된 문제를 놓고 한 자리에 앉게될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는 문제이다. 지난 5월 「닉슨」의 월맹 해안봉쇄 이래로 월맹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크게 감소된 반면 중공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소련 측이 만약 이러한 대 월맹 불균형을 이 회의에서 문제 삼는다면 「파리」회의가 맡고 있는 제한된 기능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남아 있다 하겠다.

<장두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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