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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vs 독수리 다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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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

세계화를 상징하는 스타벅스와 지역성을 대표하는 독수리 다방. 두 커피숍은 1971년 같은 해 문을 열었지만 운명은 판이하게 갈렸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 2만 개에 가까운 매장을 거느린 세계 최대 커피체인이 됐다면 독수리 다방은 2005년 경영난으로 한 차례 폐업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이 두 커피숍의 성패를 좌우했을까.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세계화 시대의 흐름을 탔는지 못 탔는지 여부다.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한 스타벅스는 세계 각지에서 고급 원두를 찾아 자체 개발한 로스팅 기법으로 ‘한잔의 완벽한 커피 맛’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면서 유럽식 카페 분위기에 재즈와 제3세계 음악까지 곁들여 ‘문화’를 팔고 있다. 또한 스타벅스 매장 문을 여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일·공부·휴식이 가능한 제3의 공간을 창출해냈다.

 반면 서울 신촌에서 문을 연 독수리 다방은 80~90년대의 지역적 성공에 만족하면서 2000년대 이후 펼쳐진 세계화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로 경쟁의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결국 독수리 다방은 한때 지역 최고 커피숍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세계화 시대에 공간·거리 등 물리적 장벽은 무의미하다. 상품·자본·기술에서부터 문화·신념·가치에 이르기까지 유통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국경을 넘는다. 가령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갓 수확된 체리나 석류가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하는 시간과 제주 감귤이 배로 서울에 도착하는 시간이 엇비슷하다. 싸이의 음악 역시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세계적인 히트곡이 됐다. 싸이가 80년대에 나왔다면 연말 국내 10대 가수 선정에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동반한다. 세계화로 인해 경쟁의 범위가 마을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세계로 점점 넓어지기 때문이다. 성공한 자는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지만 도태된 자는 마을에서조차 생존이 어려워진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양극화가 지난 몇 년간 사회갈등과 경제민주화 열풍을 낳았다.

 그렇다면 양극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패자 구제와 보호 장벽에 매달려야 할까. 결론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국가의 인위적인 보호 장벽은 해당 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다시 국가의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초기에 볍씨를 모판에서 싹을 틔운 후 논에 모를 옮겨 심는 이앙법이 일부 지방에서 시행됐다. 이앙법은 직파법에 비해 단위면적당 노동력은 줄이되 생산력을 높이는 혁신적인 농업기술이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농민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이앙법을 금지했다. 1인당 생산성이 늘어나면 사람을 덜 쓰게 돼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걱정한 것이다. 일종의 민생 보호 장벽을 둔 셈이나 결과적으로 백성들은 조선 후기까지 굶주림에 시달렸다.

 정부는 ‘일시적 패자’가 혁신을 통해 ‘영원한 승자’가 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사양 업종에는 재교육을 통해 업종을 전환해주거나 새로운 업종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방식 등을 통해서다. 세계화 시대 국가는 특정 업종의 ‘보호자’이기보다는 새로운 혁신의 ‘지원자’가 돼야 한다. 승자 발목 잡기를 하지 말고, 더 많은 글로벌 챔피언이 나올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 시대에는 결국 세계화가 답이다. 창업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하나같이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글로벌화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 공략을 목표로 한 ‘본 글로벌(born global)’ 전략이 결국 성공을 가져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글로벌 공룡기업 스타벅스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토종 커피전문점 카페베네, 2020년까지 KFC를 제치고 세계 최대 치킨 전문점으로 도약하겠다는 BBQ의 노력은 칭찬받을 만하다. 우리나라 대형마트가 공격적으로 세계화에 나선다면 언젠가 미국 월마트를 누르고 세계 최대 유통체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세계화 시대 ‘스타벅스가 되느냐 독수리 다방이 되느냐’의 선택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