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감감 무소식…미래 대한 불안감만 커져

미주중앙

입력

지난 7월 한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던 탈북자 고씨는 일가족 7명과 함께 다시 타국으로 떠났다. 5년 전쯤 LA로 온 고씨는 다른 탈북자와 마찬가지로 망명신청을 했고 노동허가증을 받아 취직도 했다. 노동허가증은 1년 짜리라 매년 갱신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영주권은 나오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고씨 일가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탈북자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 LA한인타운 빛나라교회에서 탈북자 사역을 한 문정임 목사는 "탈북자는 낯선 문화나 언어 경제적 문제 등으로 정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을 괴롭히는 게 한가지 더 있다면 신분 문제다. 영주권이 해결되지 않아 영국이나 캐나다 등 또 다른 나라로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LA인근엔 약 80~100명의 탈북자가 있다. 이들 중 절반은 한국을 거쳐 왔고 나머지는 중국 등 제3국에서 곧바로 망명했다. 3국을 통해 미국에 온 탈북자들은 신분문제가 해결된다. 미국은 지난 2004년 부터 북한인권법을 적용 탈북자가 3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에 올 때는 영주권을 내주고 있다.

하지만 탈북 후 한국으로 갔다가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 관광이나 유학생 비자로 한국에서 미국에 온 탈북자들은 도착 후 교회나 지원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똑같이 망명신청을 한다. 한국에서 온 탈북자들도 이렇게 해서 1년짜리 노동허가는 받을 수 있고 매년 갱신도 가능하다. 다만 이들에게는 몇 년이 지나도 영주권이 나오지 않고 있다. 더구나 법무부가 지난 2009년 북한인권법을 개정하면서 난민 망명자 허용 대상에 한국인 탈북자를 제외하는 내용을 삽입 사정은 더 악화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두 부류의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최초 망명지 선택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곧바로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말도 통하고 신분도 해결되며 직업교육에 초기 정착금까지 주는 한국이 좋은 게 아니냐"고 말한다. 반면 한국을 거쳐 미국에 온 사람들은 "미국이란 나라에서 신분이 해결되는 게 어디냐. 북한사람이라고 깔보고 멸시하는 편견도 없고 무엇보다 자녀 교육에도 메리트가 있으니…"라며 상대를 부러워한다.

탈북자지원회의 김종현 이사장은 "한국으로 갔다가 미국으로 오는 탈북자들은 정착금을 다 써버린 경우가 많다. 사기를 당했거나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이다. 또 한국내 북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싫어 온 경우 등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어떻게 해서든 재기를 하겠다며 미국에 오는데 그들은 시작부터 신분 때문에 미래가 불안한 삶을 사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로서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문제지만 언어나 가난 등의 어려움까지 겹치다 보니 떠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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