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월맹·중공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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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 세계의 관심은「포스트·베트남」의 국제 정세에 집중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의 이같은 관심은 오는 26일의「파리」12개국 국제회의와 더불어 하나의 분수령을 이룰 것이지만, 그에 앞서 그 전주곡을 연주하듯 미대통령 안보담당 특별 보좌관「키신저」의 행각이「하노이」와 배경을 누비고 있다. 월남전에서의 미군 포로 제1진이 석방되는 12일, 그는「하노이」에 머물러 있으며, 이어서 15일부터 19일까지는 북경을 방문할 예정이다.
막후 외교의 기수로 알려진 「키신저」의 이같은 부산한 외교행각을 가리켜 때로는「왕조외교」운운으로 야유조의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나, 어쨌든 그의 행각이 당면한 미국 외교의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키신저」가「하노이」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의 중공행각은 이번으로 다섯 번째가 된다. 그가 이들 두 나라를 방문하게 된 구체적인 목적이나 사명은 물론 각각 다른 것이겠지만, 시기적으로 그것이 협정 조인 이후의「포스트·베트남」문제와 깊은 관련을 가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키신저」는 이번「하노이」방문을 통해「파리」국제회의에서 논의할 중요 안건에 대한 사전 토의를 가질 것이며, 또 월남 복구 문제 전반에 대해서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특히 미국이 72년 2월에 표명한 25억 「달러」에 달하는 대 월맹 원조계획을 구체적으로 토의할 것이며 그 대가로 평화협정의 준수를 종용하게 될 것으로 보여진다.
또 한편, 북경에 들른「키신저」는 여기서 작년 2월의 미-중공 공동성명에 따라 양측 공동 관심사에 관해 좀더 구체적인 관계 개선책을 논의하고, 나아가 중공이 참가하게 될 월남 문제 국제회의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여진다.
월남 전후의 가장 큰 주목거리는 월남 평화협정이 여하히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월남 평화협정을 유지할 수 있는 요소는 월남의 자위 력에 의한 군사적인 균형을 비롯해서 국제적인 보위 둥 복합적인 조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월맹과 그 후견세력인 중공-소련의 성의문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있음으로써만 월남 평화협정은 유지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따라서「키신저」의「하노이」·북경방문은 월맹·중공으로 하여금 월남 평화협정을 준수하고 보장하도록 촉구함은 물론, 그들의 이른바 폭력적인「인민해방전쟁」을 포기하도록 작용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포스트·베트남」시대가 문자 그대로 평화의 시대로 전환할 수 있느냐. 아니면 또 하나의「위험의 시대」로 전락하느냐는 여러 면에서「포스트·베트남」시대를 가져오게 한 주요「멤버」인 미국의 역할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동남아에서 미군이 철수한 후 그 진공상태에 대해 공산 측이 어떻게 나을 것이냐 하는 것도 비상한 관심사이지만, 사실상 미국의 역할이야말로 결정적인 것이므로 미국은 동남아의 안정을 위해 자유국가와 긴밀한 유대를 계속 굳게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중공과 월맹에 대한 지나친 유화는 상대적으로 자유중국 또는 월남의 지위를 격하시킬 것은 물론, 여타 전「아시아」자유국가를 동요시키기 쉬울 것이다. 여기 미국의 대 중공·월맹 외교가 관계 자유국가와의 긴밀한 협조와 공동보조를 바탕으로 함으로써만 그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하는 소 이가 있다.
세력균형이 곧 긴장완화의 동인이라면「포스트·베트남」시대에서의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아정책 역시 이 논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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