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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陽奉陰違[양봉음위]

중앙일보

입력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재위 712∼756년) 시기에 병부상서와 중서령이라는 직책을 겸한 이임보(李林甫)라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날로 치자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서예와 그림에 능했고, 얼굴은 푸근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품덕(品德)은 아주 고약했다. 다른 사람 잘되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았고, 자기 자리를 넘보는 사람은 가차없이 싹을 잘랐다.

당시 관료 중에 이적(李適)이라는 사람이 있어 승승장구(乘勝長驅)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적이 자신을 위협할 것으로 생각한 이임보는 즉각 ‘공작’에 들어갔다. 그는 이적에게 “화산(華山)에 대규모 황금이 묻혀 있으나 황제가 이를 알지 못하니 안타깝다”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 말을 들은 이적은 황제를 만난 자리에서 ‘화산의 황금을 캐 나라를 부유케 하자’고 건의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재상인 이임보에게 즉각 채굴을 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이임보는 엉뚱한 말을 했다. “화산은 황제의 정기가 서린 곳입니다. 어찌 감히 산을 파헤칠 수 있겠습니까? 반역을 꾀하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할 리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당 현종은 이적을 멀리했고, 이임보는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사마광(司馬光·1019~1086)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이임보의 이런 행태를 꼬집어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고 표현했다. ‘달콤하게 말하지만 속으론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구밀복검과 같은 뜻의 말이 바로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고모부 장성택을 내치며 내건 ‘양봉음위(陽奉陰違)’다. ‘겉으로는 명령을 받드는 척하지만 뒤로는 배반한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36계(計)’ 병법의 하나인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속에 칼을 숨기다)가 같은 뜻이고, 구시심비(口是心非·입으로는 그렇다 하고 마음으로는 아니라 한다), 표리부동(表里不同·겉과 속이 다르다)도 같은 맥락이다. 양면삼도(兩面三刀)는 ‘두 가지 마음으로 상대를 해(害)한다’라는 점에서 양봉음위와 같은 의미다. 배신자의 행태가 많기에 이를 묘사하는 단어도 많을 것이다.

양봉음위의 죄를 지은 장성택은 결국 총살되는 운명을 맞아야 했다. 과연 그는 마음속에 김정은을 겨냥한 칼을 진정 품었던 것일까? 절대권력 앞에서의 구밀복검은 목숨을 건 게임이런가.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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