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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장악 못해 떠밀려" "김정은 절대권력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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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고 난 뒤 첫 행보로 군 설계연구소를 찾았다. 노동신문은 14일자 1면에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는 내용의 기사와 이 장면을 포함한 세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황병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왼쪽), 최용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왼쪽 셋째), 장정남 인민무력부장(김정은 오른쪽 뒤 얼굴 반만 보이는 사람)이 동행하고 있다. 신문은 이곳을 4·25문화회관, 서해갑문 등을 세우는 데 이바지한 곳이라고 보도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의 절대권력 과시인가, ‘평양판 무신(武臣)의 난(亂)’인가. 고모부 장성택과 그 휘하세력을 전광석화처럼 체포·처형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이번 사태에 어느 정도의 힘을 미쳤는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확고하게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는 측에서는 ‘유일지배 체제’라는 특성상 절대적 권한을 휘둘렀다고 본다. 하지만 후계 권력구도를 굳히는 데 미진하거나 실패한 김정은이 군부 강경파에 의해 등 떠밀리듯 고모부에게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란 견해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국군 기무사령관(2008년 3월~2010년 4월) 출신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은 후자, 즉 군부에 의한 강경조치라고 주장한다. 김 의원은 15일 통화에서 “김정은이 권력을 쥔 이후부터 군부의 불만이 고조돼 왔고, 이를 무마하려 장성택을 처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 대신 핵 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는 병진노선을 펴 군부의 불만을 샀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올해 초 미국이 김정은의 비자금을 찾았고, 이때 북한 군부가 내부 감시를 피해 중국에 보관하던 돈도 미국에 의해 묶였다”며 “군 수뇌부의 환심을 사는데 사용되던 사치품 수입도 통제되면서 군부의 불만이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불만을 해소하려 장성택에게 갖은 죄목을 뒤집어씌워 처형한 것이란 얘기다.

 서방의 유력한 대북 소식통인 평양 주재 토마스 쉐퍼 독일 대사도 이번 사태 초기에 비슷한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장성택 숙청으로 김정은의 유일지배 체제가 강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며 “김정은에 대한 군부 등의 충성이 약하다”고 주장했다.

 중국통인 장성택이 북·중 합영 투자를 책임지며 돈줄을 쥐고 군부에 상당한 압박을 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성택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결문에도 “장성택은 군대의 충정이 깃들어 있는 물자를 중도에서 가로채 심복졸개들에게 나눠줬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또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타산하며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책동했다”고 했다.

 장성택이 군부와의 권력투쟁에서 먼저 칼을 뽑았다가 반격을 당했다는 해석도 있다. 한때 군부보다 더 힘을 쓰던 장성택이 신진 군부세력에 의해 되치기를 당했고 김정은은 그 틈에 끼여 있었다는 것이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굳어져 가던 2011년 1월엔 국가안전보위부 실세인 류경 부부장이 간첩죄로 처형됐다. 또 김정은의 ‘과외교사’로 낙점된 이영호 전 참모총장은 지난해 7월 전격 숙청됐다.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포스트 김정일’을 노리던 장성택 그룹이었으며, 절치부심하던 군부 세력이 은밀하게 김정은을 움직여 제거했다는 것이 분석의 골자다.

 이런 설명대로라면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사회에서 아직 김정은의 권력은 공고화됐다고 보기 이른 측면이 있다. 장성택 처형으로 내부 분열과 권력투쟁이 오히려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통일을 여는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하는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은 “김정은은 체제 엘리트인 군과 당, 행정관료와 군부를 안정시킬 만한 권위가 취약하다”며 “엘리트 간에 지속적인 대립과 갈등, 충돌이 있어왔고 이 문제가 폭발하면서 장성택 숙청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반론을 제기하는 북한 전문가도 적지 않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군부는 철저한 참모들로, 이동이나 훈련을 하는 데도 당의 결정을 따른다”며 “김정은의 핵심 실세이자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은 군복을 입고 있지만 실제는 당 관료로서 군을 컨트롤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탈북자 출신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도 “김정은이 이영길 총참모장이나 장정남 무력부장 등 충성심 강한 자신의 측근들을 통해 군을 틀어쥐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도 지난 6일 장성택 실각과 관련한 국회 정보위 현안보고에서 “김정은은 40~50대의 젊은 간부를 많이 등용하면서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있고, 간부층을 중심으로 충성경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일단 김정은이 정적을 제거한 후 장악력을 한층 더 높였다는 평가다.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군부 내 비선(秘線)그룹이 있다 해도 일단 김정은과 하나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를 지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장성택을 등에 업고 권력을 공고히 해 오던 김정은이 장성택의 세력이 커지니 싹을 잘라버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정은이 한 번은 장성택, 한 번은 군부의 손을 들어주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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