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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서울 온 장성택 "유흥주점 가보자" 분방한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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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02년 10월 26일 북한의 고위 경제시찰단으로 남한을 찾은 장성택 당시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가운데). 박남기 북측 시찰단장(오른쪽·2010년 처형)이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북한의 시찰단 일행은 당시 8박 9일 일정으로 머물렀다. [중앙포토]

장성택은 북한 최고위층 가운데는 드물게 서울을 방문했던 인사다. 그의 행적이 우리 측 인사들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그가 서울을 찾은 건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2년 10월 26일이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방한한 경제시찰단의 ‘단원’ 자격으로 입경했다.

 시찰단장은 북한이 화폐개혁의 주범으로 몰아 처형했던 장성택의 측근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이었다. 그러나 단장이 장성택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신라호텔에 여장을 풀고 첫 일정인 삼성동 무역센터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박남기 단장이 그의 걸음에 방해가 될까 곁눈질을 하며 나란히 걸음을 재촉했다.

 당시 장성택은 고급 비둘기색 양복에, 옅은 갈색 컬러가 섞인 안경을 쓰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김일성 배지(초상휘장)만 없었다면 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서울에 온 소감이 어떠하냐”는 계속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단장 선생에게 물어보시오!”라고만 대답했다. 답변은 짧았지만 남측 언론을 대하면서도 긴장하는 것 같지 않았고, 여유 있는 태도였다.

 그는 방한기간 동안 내내 거리낌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자신에게 남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걸 느꼈기 때문인지 북측 관계자를 불러 “내일(28일자) 남측 신문이 나오면 내용을 보고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한다.

 경주에 들렀을 땐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북측 경제사절단 숙소는 경주 인터불고 호텔이었다. 아침식사는 오전 7시부터 호텔 1층에서 하도록 돼 있었으나 북측 인사들은 아무도 식당에 오지 않았다. 장성택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정된 식사시간을 20분 넘겨서야 방문을 열었다. 그 시간 동안 아무도 방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장성택이 나오자 북한 사절단 인사들은 도열하듯이 복도 벽 쪽으로 붙어 길을 비켜줬다고 한다. 당시 북한 시찰단과 일정을 함께했던 우리 측 관계자는 “아무도 감히 방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발렌타인 30년산 고급 양주로 폭탄주를 마시고, 유흥주점에도 가보자고 했었을 만큼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였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장성택은 수원 삼성전자 공장도 찾았다. 박남기 단장이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자동판매기 앞에서 “계산은 어떻게 하느냐” “나중에 카드값을 안 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옆 사람에게 쓸데없는 걸 묻는다는 듯 “야! 빨리 가자고 그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그러자 박남기는 아무런 질문도 못하고 장성택의 눈치만 살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시만 해도 로열패밀리의 ‘힘’이 느껴졌던 셈이다.

 당시 장성택은 귀국길에 삼성전자에서 관심 있게 봤던 김치냉장고를 판문점을 통해 북송했다고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출판할 예정이던 ‘북한경제 발전전략의 모색’이란 460여 페이지짜리 보고서도 몇 권 챙겼다. 북한의 경제 회생을 위해 외자 유치를 통한 특구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섬’(특구) 전략을 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새마을운동’ 전략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북한은 신의주 특구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김정은도 최근 14개 특구를 선정하긴 했지만 외부 문물을 철저히 차단하며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는 ‘모기장’식 개발을 주창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장성택 아니곤 보고서를 가져갈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방한 활동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장성택은 몇 달 뒤 숙청됐다. 측근들의 호화결혼식과 조직지도부 안에 별도의 사찰 및 경제부서를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김정일은 이와 관련, 2005년 6월 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장성택의 안부를 물었던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남쪽에서 폭탄주를 많이 마셔 몸을 버렸다고 하길래 조금 쉬라고 했다”고 받아넘겼다. 얼마 뒤 장성택은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컴백했다. 아버지는 조금 쉬게 했을 뿐이지만 아들 김정은은 달랐다.

정용수 기자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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