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송전탑 갈등 박수치며 해결 뒤엔 "싸움 대신 협상" 평화 멘토들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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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민들은 외부 세력이 들어오겠다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다. 몸싸움과 시위 대신 대화와 타협을 통해 5년간 끌어온 지역 갈등을 해결했다. 지난 12일 국민권익위원회 중재로 주민과 한전 측의 박수 속에 타결된 전북 군산 새만금송전선로 건설 얘기다.

 경남 밀양 등지에서 송전탑 문제가 극한 갈등으로 치닫는 것과 달리 군산에서는 평화적으로 해결된 데는 숨은 10명의 리더가 있었다. 군산지역에서 활동하는 교회 목사들이다.

 군산 송전탑은 2008년 12월 군산시장과 한국전력 사장 간 양해각서(MOU)가 체결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일부에선 공사가 진행됐지만 일부에선 주민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지난해 초엔 군산시 회현면 등지와 한전과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수시로 몸싸움이 생겼고, 이로 인해 일부 노인은 병원 치료를 받았다.

 지난해 4월 보다 못한 10명의 목사가 나섰다. 이태영(55·군산 수산교회·사진) 목사가 주축이 됐다. “폭력은 답이 아니다”는 생각에서였다. 윤갑식(63·월연교회) 목사는 “경남 밀양처럼 극한으로 치닫다 공권력이 투입되면 주민들이 다칠까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에겐 원색적이고 폭력적인 문구가 담긴 현수막은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불만과 분노를 그대로 분출할 게 아니고 사회적 지지를 얻어내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동시에 “보상금을 더 받아내려 주민들이 떼를 쓴다”는 오해 풀기에도 나섰다. 송전선로에 대한 주민들의 두려움과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소식지 10만 부를 목사들이 자비로 만들어 군산시내에 뿌렸다.

 대화의 마당 또한 마련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주민 대표와 한전, 군산시청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송전탑 건설의 바람직한 방향과 인체 유해 논란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

 목사들의 노력은 조금씩 결실을 맺었다. 한전과 주민은 대화의 상대가 됐다. 지난 7월엔 조환익 한전 사장이 주민 대표들을 서울로 초청해 의견을 나눴다. 그 직후 일부 외부 단체가 “연대 투쟁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주민들이 거부했다. 새만금 송전선로건설 반대대책위원회 강정식 간사는 “우리끼리 잘해 나가는데 외부 세력과 힘을 합쳐 공연히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주민들은 지난 12일 한전과 “마을을 우회하는 송전선로를 만든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군산과 달리 밀양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13일에는 주민 권모(41·여)씨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지금까지 주민 2명이 “내 땅에 송전탑은 안 된다”며 목숨을 끊었다. 주민들은 암·백혈병 발생 등 건강 위협, 땅값 하락 등을 이유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외부 세력도 개입해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점점 복잡하게 얽히는 상황이다.

 군산 새만금 송전선로는 새만금 산업단지 등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군산시 임피면 군산 변전소에서 군산시 산북동 새만금 변전소까지 총 30.4㎞ 구간에 345㎸급의 송전탑 88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주민들은 당초 새만금송전선로 가운데 회현면∼새만금 변전소 구간의 우회를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날 권익위가 미군 측에 송전탑 높이를 건설이 가능한 최저 높이인 39.4m로 하면 수용할 수 있는지 등을 물은 뒤 그 결과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한 미군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존 선로 건설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황선윤·권철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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