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대 가짜 영수증 만들어 500억 탈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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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속칭 ‘자료상’업자 구모씨와 곽모씨는 지난해 ‘폐구리(廢銅)’사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들은 ‘간판업체’라 불리는 유령업체를 설립한 뒤 그 아래에 여러 개의 자료상업체를 두는 피라미드 조직을 꾸렸다. 하위 자료상업체의 ‘바지사장’들은 역할을 나눠 실제 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전표와 장부를 조작하고 현금 잔액을 맞췄다. 이들이 지난해 상반기 폐구리 판매업자들에게 만들어 준 가짜 세금계산서는 1000억원대. 거래가액의 2~5%를 수수료로 받아 챙겼다.

 대검찰청과 국세청은 지난 9월부터 자료상을 합동 단속한 결과 2조1293억원에 달하는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사실을 적발했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은 자료상과 판매업자 등 58명을 구속 기소하고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세무 당국도 가짜 매입영수증을 공급받아 세금을 탈루한 판매업자들에게 500억원대 세금을 부과했다.

 자료상이란 유령업체를 설립해 사업자 등록을 한 뒤 다른 사업자에게 물품이나 용역을 공급한 것처럼 가짜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주는 전문업자들이다. 부가가치세가 매출세액(매출액의 10%)에서 매입세액(매입액의 10%)을 공제하는 방법으로 매겨지는 점을 노려 세금을 탈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억원어치의 상품을 매입해 150억원에 판매하는 사업자는 5억원의 부가세를 납부해야 하지만 가짜 매입영수증 20억원어치를 첨부하면 매입액을 120억원으로 늘릴 수 있어 3억원의 부가세만 납부하면 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자료상들은 주로 금지금(金地金·순도 99.5% 이상의 금괴) 거래 과정에 개입했다. 밀수 등 자료가 없는 금 매입선이 많아 가짜 세금계산서 수요가 많은 데다 거래 단위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부터 금지금에 대해 ‘부가세 매입자 납부제’가 시행돼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이 불가능해지자 자료상들은 다른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대표적인 것이 폐구리 거래다. 2008년 이후 구리 등 비철금속 가격이 크게 올랐고, 고물상을 통한 무자료 거래가 많아 가짜 세금계산서 수요가 커졌다. 대검 관계자는 “자료상들이 최근 폐구리와 고철, 석유 등 값이 오른 원자재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자료상까지 등장했다. 휴대전화의 경우 총판격인 대리점이 매출을 올리고, 실제 판매점은 수수료 매출만을 올리는 유통구조를 이용한 것이다. 무자료 거래를 통해 휴대전화를 공급받은 판매점들은 자료상으로부터 가짜 세금계산서를 공급받아 정상 거래로 위장해 수수료 매출세금을 탈루하다 당국에 적발됐다.

 검찰과 국세청은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무자료상을 통한 세금 탈루를 실시간 적발하는 ‘패스트 트랙(Fast-Track)’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또 현재 5년인 자료상 범죄의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법 개정도 하기로 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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