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제 통화 위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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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럽」의 주요 외환 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다시 폭락함으로써 새로운 국제 통화 위기가 야기될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구주에서의 「달러」 가치 폭락은 즉각 동경의 외환시장을 교란시켜 선물환 시세는 1 「달러」당 2백94「엥」으로 하룻 동안에 무려 3「엥」95전이 떨어졌다.
이러한 파동으로 서독 등 일본 정부는 「달러」 지원을 위한 개입에 착수하는 동시에 외환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중인데, 사태는 매우 유동적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달러」화의 가치 하락은 미국의 72년도 국제 수지 적자가 「스미드소니언」 체제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크게 개선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수년 내로는 정상화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달러」화의 동요를 조장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서는 ①국제적인 「인플레」의 현저한 진전 과정에서 미국 경제의 상대적 생산성이 뒤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과 ②영국의 「파운드」화 및 이태리의 「리라」화가 매우 약세에 있으며 ③「프랑스」의 정치적 안정성의 전망에 불안 요인이 내재해 있다는 관측 등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제 요인 외에도 오는 9월의 IMF 「나이로비」총회까지에도 이렇다 할 국제 통화 개혁안이 마련될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달러」화의 동요를 자극하는 요인일 것이다.
확실히 오늘의 국제 경제 동향은 각국이 내세우는 명분과는 반대로 오히려 외환 통제의 일반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각국은 더욱더 보호 무역 정책을 가중시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명분과 실제가 반대로 움직이는 것은 국제 경제상의 주도권이 분산되었으며 미국·EEC·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이해 관계 대립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제 통화 및 무역 질서의 형성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 통화 질서의 발견과 형성을 위한 협상 기간이 장기화하면 할 수록 과도적인 혼란이 거듭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주요 선진국이 자국 경제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상호 악순환 관계를 형성시켜 시대 역행적인 외환 통제·보호 무역의 강화로 귀결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달러」화 파동이 어떤 방법으로 수습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예측키 어려우나 수출 증대에 경제 정책의 성패를 걸다시피 한 우리의 처지로서는 국제 경제 동향을 더욱 깊이 검토하여 이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측면은 「달러」화의 폭락이 일본의 「엥」화 재 절상을 불가피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일본의 자본과 원자재에 더욱 많이 의존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국제 경제 동향과 「엥」화, 그리고 한국 경제라는 삼각 관계는 보다 깊이 있게 다뤄야 할 입장인 것이다.
다음으로, 국제적인 「인플레」의 진행에 따라서 새로운 고금리 시대가 대두되고 있으며 주요 선진국의 경기 동향이 종래와는 반대로 호황 기간이 짧고 불황 기간이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여건 하에서 국내 경제 정책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검토하는 신중성을 보여주어야 하겠다. 물론 국제 경제 규모에서 우리의 무역 비율은 「네글리저블」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한 것)이기 때문에 국제 경제 동향을 공시할 필요가 없다는 관변 「이코너미스트」들의 의견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깊이가 엷고 대외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제 경제 여건의 변화가 가져오게 될 충격 요인은 오히려 크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 부합되는 것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제 경제 동향을 비교적 등한히 해도 좋았던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하겠으므로 정책 수립에 있어 대외 여건 변동을 충분히 반영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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