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집짓기' 운동 펼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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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광주시 북구 용봉동 용봉지구.

따사로운 봄 햇볕 아래 단독주택지 한 곳에선 낡은 작업복 차림의 주민 10여명이 새 집을 짓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

한쪽에선 창문을 끼우고 다른 한쪽에선 전기 배선을 설치하는 등 바쁜 모습니다.

이들은 날품을 파는 일꾼들이 아니다. 불우 이웃에게 포근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나선 용봉동 주민자치위원들이다.

지난달 27일부터 낡은 가옥을 철거하고 터닦기 공사를 시작한 이들은 오는 20일쯤 열릴 입주식을 앞두고 요즘 마무리 단장에 한창이다.

이들은 지난 1월 정례회의에서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첫 사업으로 이 집을 짓고 있다.

소외된 이웃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보수·신축비가 없어 폐가(廢家)나 다름 없는 낡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주민에게 새 집을 지어주기로 한 것이다. 비용은 자치단체나 기관의 도움없이 마을 주민자치위원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하기로 했다.

현재 짓고 있는 집은 3급 지체 장애자로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인 정한석(41)씨 가족의 보금자리다.

정씨는 네차례에 걸쳐 고관절 수술을 받는 등 10여년 동안 무릎 관절을 전혀 움직이지 못해 대·소변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처지여서 날품팔이를 하는 칠순 노모가 생계를 이끌고 있다. 조선족 아내는 정씨를 비롯해 네살바기와 갓 돌을 넘긴 젖먹이를 수발하느라 바깥 출입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하루 연탄 한 장으로 난방을 대신하고 땔나무를 구해다가 조리를 하는 등 30여년 된 오두막에서 생활해 왔다. 지난해 태풍 루사가 닥쳤을 때 뚫린 천장을 비닐로 막아 비가림도 제대로 못한 채 지난 겨울을 나야 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 한 복판에 아직도 나무로 불을 지펴 밥을 짓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건축사인 고남석(高南錫·45) 위원은 “12평짜리 조립식 가옥이지만 모든 역량을 쏟아 아담한 보금자리를 선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 집을 짓는데 드는 자재비 2천5백만원은 물론 자치위원들이 부담했다.

또 이들은 건축사를 비롯해 건설·토목·전기·인테리어·목재업 등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설계 및 터닦기·골조 공사에서 전기설비,장판·도배,인테리어,보일러·싱크대·욕조 설치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담당했다.

사랑의 봉사 활동에 나선다는 보람 때문에 이들은 하루라도 현장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업이 손에 잡히질 않을 정도라고 했다.

북구청도 이의 땀과 정성이 깃든 ‘사랑의 집 1호’가 완공되면 대대적인 입주식을 벌일 예정이다.

현재 친척 집에서 머물고 있는 정씨는 “거실·부엌·욕실·화장실을 갖춘 집은 꿈에서나 살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며 “현대식 주택이 내집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랜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자치위원과 주민들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수 없다”며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광주=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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