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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이식 기증자를 찾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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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31면

내 소중한 한국인 친구 중 한 명이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께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골수이식 여부에 따라 생사 여부가 갈릴 수 있는 시급한 상황이라고 한다. 당연히 골수 이식 희망자 명단에 등록했다. 세계 곳곳엔 2000만 명이 넘는 골수 기증자 후보가 있고, 실제 이식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수만 분의 1밖에 안 된다. 실제 현실은 확률 수치보다 훨씬 더 어렵다. 내 친구 어머니도 아직 골수이식자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세계 전역에 골수이식 가능자가 수천만 명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같은 인종일 때 현실적으로 이식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내 친구 어머니의 경우엔 한국, 더 넓혀 봤자 동아시아로 한정된다. 게다가 아시아 환자들의 경우 이식 가능한 기증자를 찾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더 낮다고 한다. 백인의 경우 1만1000명당 1명꼴이지만 아시아에선 2만9000명당 1명이라는 연구결과도 미국 학계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이상적 시나리오는 한국의 골수이식 기증 희망자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한국조혈모세포협회의 명단에 있는 숫자는 24만3000명이다(2012년 기준). 이 숫자는 좀체 증가하지 않고 있다. 새로 등록하는 기증 희망자 수는 오랜 기간 연 1만5000~2만 명을 넘기지 못했다. 반면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들거나 사고를 당해 이식을 하지 못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1인당 숫자로 보면 한국의 골수 기증 희망자 수가 가장 적은 건 아니지만 더 많은 나라도 상당수다. 가장 좋은 예가 이스라엘인데, 기증 희망자 수가 50만 명을 넘는다. 16명 중 1명꼴로 골수 기증을 희망한다는 얘기다. 독일은 400만 명이어서 20명 중 1명인 셈이다. 내 고국인 영국은 80명 중 1명꼴이다. 그러나 한국은 200명 중 1명만이 골수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상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한국인이 골수 기증 희망자로 등록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한국에선 기증 희망자로 등록하려면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선 면봉 하나로 모든 검사가 빠르고도 간단하게 끝난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다.

헌혈과 달리 골수 기증은 복잡하고 조금은 불편한 과정이다. 일하는 것도 며칠간 쉬어야 한다. 아쉽게도 골수 기증 희망자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한국에선 미비된 상태라고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한국 기업들이 골수 기증을 장려할 이유를 찾긴 어렵다.

골수 기증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따라서 그 절차를 쉽게 만들어줄 의무가 사회공동체에 있다. 순수한 이타심으로 기증을 하는 이들이 물론 많기를 바라지만 기증자들에게 유의미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에 따르면 잠재적 기증자의 가족 동의 역시 필요하다고 한다. 기증자 본인이 희망한다 해도 그의 가족들이 지지하지 않는다면 기증 과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타인보다는 가족의 의견이 더 중요한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골수 기증은 그렇게까지 크나큰 위험을 수반하는 과정은 아니다. 또 모두의 공익을 위하는 일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기증자가 더 많아진다면 내 친구 어머니도 적절한 기증자를 찾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사실 세 명의 기증 가능자를 찾기는 했지만 모두 중간에 포기했다. 그래서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그동안 혹시라도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 중에 내 친구 어머니를 위해 골수를 기증해 줄 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골수 기증이란 인류를 위한 선행이다. 오늘 당장 골수 기증 희망자로 등록하는 건 어떨까.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학사)·맨체스터대(MBA) 졸업 후 2010년부터 서울서 일했다. 한국에 대한 생각을 모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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