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선출 싸고 이례적 과열 경쟁|제12회 문협 총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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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매년 초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문인협회 정기총회는 모처럼 전국의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뜻을 찾을 수 있겠으나 최근 몇 년 동안의 문협 총회 양상은 이사장선출이라는, 문학인으로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이슈」에 휘말려 본래의 의의가 퇴색해 가는 감이 있다. 특히 금년도 총회는 현 이사장 김동리씨와 부 이사장 조연현씨 간의 이사장 다툼이 이상과열상태를 빚어 벌써 몇 달 전부터 문단에서는 물론 문단의 움직임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선거결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게 했었다.
약 1천명에 달하는(회원총수 9백97명) 회원을 상대로 전개된 이들 두 후보의 득표작전은 기성정치인의 선거전략에 못지 않게 치밀하고 조직적이어서 이번 총회는 우리나라 신문학개화이후의 문단행사 가운데 최고의 흥미 거리라는 것이, 일치된 견해였다.
27일 낮 12시30분 서울 명지대학 강당에서 총회가 개막되기 직전까지 양 후보측은 서로 투표자의 60%선 득표를 장담하면서 상대방의「명예로운 후퇴」를 종용했다.
김 후보측은『이미 조 후보가 문협 부 이사장에 예윤 위원장,「현대문학」「시문학」주간,「펜·클럽」부위원장 등 요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월간문학」편집권을 갖는 문협 이사 장직까지 겸하는 것은 문단의 1인 체제를 형성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조 후보 측은『이미 두 차례나 이사장 직을 연임한 김 후보가 이사장 직을 양보함으로써 보다 참신한 문 협의 운영을 조 후보에게 맡겨야된다』고 맞섰다.
김-조 두 후보의 60% 득표계산은 서로 일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김 후보는 2년 동안 문협 이사장을 지내면서 쌓아온 착실한 기반과 문단의 직계후배로써 형성된 튼튼한 조직력을 뒷받침으로 그 계산은 타당한 듯 보였고, 조 후보는「현대문학」「시문학」출신의 방대하고 짜임새 있는 젊은 문인 층이 조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 역시 타당한 계산으로 평가된 것이다. 그러나 1차 투표의 집계결과는 3백21표 대 3백19표로 김 후보가 조 후보를 9표 앞섰을 뿐 아무도 과반수득표를 하지 못했다.
이번 문협 총회의 선거열풍은 지방문인의 대거참여로써도 그 열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회원총수의 약 40%를 지방문인으로 보면 이번 총회에 참석한 지방문인은 적어도 2백 명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 예로 전남 K시에서는 회원가운데 한두 명을 제외한 20여명이 단체상경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70고령의 노시인(김광범씨)이 병구를 부축 받으며 투표하는 모습이라든가 공식적인 모임에 거의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던 여러 문인들이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모습은 사뭇 긴박감을 주기도 했다. 법조계의 한 문인은『혼란과 무질서 속에 계속되는 투표상황을 보고 세상에 처음 보는 투표』라고 실소를 터뜨리는가 하면 어민문인은『글쓴다고 나서기가 부끄럽게 됐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약 2시간에 걸친 투표의 집계결과 김 후보 조 후보 외에 후보 아닌 모윤숙씨 5표, 김현승 윤병로 정을병씨 등 7명이 각각 1표씩 얻었으며, 무효 6표, 기권 2표로 나타났는데 조 후보가 사퇴의사를 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조씨의 지지자들은 재투표를 강력히 주장, 장시간의 정회 끝에 재투표를 위한 총회는 무기연기(2월 중순 예정)되고 말았다. 이날 총회 막바지의 분위기는 막후 조정으로라도 또 한번 문인들의 과열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측으로 기우는 것 같았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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