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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이미지 개선·「롤백」겨냥한 일석이조|유진산 당수 사퇴와 정일형 권한 대행 선임의 안팎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거년 10·17 이후 우리당의 지도이념과 노선이 중대한 시련에 직면했고 뿐만 아니라 일부의 고질적인 분파 행동은 국민과 당원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게 된 것은 실로 송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에. 대표위원인 본인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그 직을 물러남이 옳다고 생각한 나머지 대표 위원직을 사퇴하는 바입니다.』
유진산 신민 당수는 22일 선거대책 중앙위에서 이 같은 내용의「사퇴 원」을 제출, 71년 진산 파동 때에 이어 두 번째로 당수 직을 물러났다.
유씨의 사퇴는 그 실질적 내용과 경위는 어떠하든지 간에 몇 가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그로 인해 국민들이 신민당에 가졌던 진산 적「이미지」를 어느 정도 해소함으로써 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둘째로는 그 동안 그의 사퇴여부와 당직 인선내용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당내부화를 약간은 완화할 수 있게 됐다. 유씨에게 사퇴를 권유했다가 틈이 생겨「일체의 당직을 맡지 않겠다』고 물러섰던 고흥문씨는『당의 앞날을 위해 하기 어려운 용단을 내렸다』고 했다.
유진산씨는 당수 직을 사퇴하면서 정일형 정무회의 부의장을 당수 권한을 대행토록 지명하고 당무는 이철승·김영삼 두 부의장과 협의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묘한 조건을 붙였다.
정씨 권한 대행은 신당 운동에 참여했다가 주저앉은 정씨 계에 대한 보답과 정씨 개인에게 원로로서의 예우를 한 것으로 일단 볼 수 있다.
그러나 당무를 다른 두 부의장과 협의하여 처리하도록 하고 선거대책 기구의 핵심인 본부장에 유씨가 신임하는 김의택 씨를 임명한 것은 부의장 세 사람이 상호 견제케 하여 다른 두 사람의 소외감을 덜고 또 선거기간 중의 실질적인 당무를 자 파 사람에게 맡김으로써 당수권한 대행의 독주여지를 없애겠다는 의도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정무회의를 비롯해서 유 당수가 사퇴직전까지 짜놓은 모든 당 기구는 주류 절대우위로 짜여져 있다. 그럼에도 그는 당수권한 대행을 특정 부의장에 맡기지 않고 세부의 장단에 맡기는 묘책을 마지막 순간까지 밀고 갔다. 이 때문에 정일형씨는 그 동안의 인선에서 소외된 불만까지 곁들어 22일 아침 정무회의 부 의장직 사표를 유 당수에게 냈다.
유 당수는 정부의장의 사표를 받고 이철승 김영삼 두 부의장과 대책을 협의했는데 이 자리서 김영삼씨가 정씨에게 당수 권한 대행을 맡기는 것만이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는 길이라고 강력히 주장해 유 당수도 굴복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위와 유 당수 친위들의 주장을 종합해 볼 때 유 당수의 후퇴는 긍정적인 것이고 선거 후 당수로 복귀하기 위한 포석을 철저하게 깔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유 당수의 사퇴서는 처리 기관인 전당대회를 열 때까지 유보된 상태에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유씨가 신민당을 대표한다. 다만 당수로서의 당무 처리는 사퇴서가 처리될 때까지는 유씨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당수 직 사퇴서 처리에 대해 진산 친위 일부에선 중앙상위에서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간편한 방법을 구상하고 있지만 당헌해석이나 관례로 보아 전당대회만이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이 때문에 신민당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 대체로 4월쯤 임시 전당대회를 열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선 선거 후 새 정당법에 따른 지구당 정비까지 끝내 전당대회를 치르려면 5월 하순이 돼야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임시 전당대회 대 유 당수의 친위 우대인선에 대한 반발이 뭉쳐져 그의 사토를 기정 사실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세력판도로 보아 유 당수의 재등장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볼 수밖에 없다. <허 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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