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오보와의 전쟁"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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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11일 '오보(誤報)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청와대가 발행하는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盧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신임 국무위원과 배석자를 소개하던 도중 "앞으로 어려운 일을 맡게 될 조영동(趙永東)국정홍보처장을 소개한다"며 "앞으로 오보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전쟁'이라는 용어를 국무회의 석상에서 언론을 상대로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전쟁'이라는 비유는 주로 마약이나 범죄를 대상으로나 사용했다. 盧대통령 특유의 강조 화법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그러한 선언을 하게 된 배경과 현 정부의 대 언론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일부에선 이번 선언을 단순히 '오보라고 판단한 기사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수준을 넘어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나 논평을 하는 언론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실린 것이라는 해석도 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이를 앞으로 국가 홍보를 담당할 신임 국정홍보처장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발언함으로써 趙처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盧대통령이 특정 언론과 갈등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1일자 청와대 브리핑에서도 대통령이 '오보와의 전쟁'을 선언했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바로 옆에 "조선 대통령 발언 또 시비/'대북독자노선' 안한 말 만들어 사설로 비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이번 선언의 배경을 짐작케 했다.

청와대 브리핑은 이 사설의 기초가 된 '대북 정책 독자노선 불가피'란 제목의 이 신문 10일자 1면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문제의 기사는 9일 저녁 민주당 지도부 만찬에서 대통령이 "9.11 테러 이후 미국 입장이 변하는 바람에 독자적인 노선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고 참석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청와대 브리핑은 만찬에 참석한 한 청와대 비서관의 말을 빌려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북 공격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그렇게 세계 각국에 알리면 미국의 북한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며 문제의 기사는 "대통령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예전 정권에서는 보지 못한 적극적인 대응이다.

盧대통령은 7일 국정토론회에서도 장관들에게 '언론과의 긴장관계 유지'를 당부했다. 이번에 한 발 나아가 전쟁이란 직설적 표현으로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언론 보도에 대한 적극 대응 방침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언론과의 밀월보다 잘못된 보도에 대한 대응이 더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이로 미뤄볼 때 앞으로 언론 관계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법적 조치를 취하는 등 강경 대응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이 같은 盧대통령의 언론 대응 방식은 이미 지난 대선 기간 중에 윤곽이 드러났다. 당시 대선 캠프는 "잘못된 보도, 부당한 보도 등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에게 바로 전달하면서 일일이 목소리를 내 국민적 이해를 구하고 판단토록 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당시 대선 캠프는 '노무현 브리핑'이라는 이름의 온.오프라인 공보자료를 발행해 잘못됐다고 판단한 보도에 대해 일일이 대응했다.

'노무현 브리핑'은 당선자 시절에는 '인수위 보고서'로 제호를 바꾸고 '오보(誤報) 리스트'를 싣기도 했으며 인수위 활동 종료 후에는 '오보 백서'를 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취임 이후에는 '청와대 브리핑'으로 이어져 사실상 미디어 비평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언론의 오보 등 잘못된 보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언론을 적으로 삼아 전쟁을 한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다.

채인택.김성탁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오보와의 전쟁'을 선언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실은 11일자 청와대 브리핑. 盧대통령이 "대북 독자노선이 불가피하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와 관련 사설은 자의적 해석이라는 내용과 나란히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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