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건축가 「샤라운」옹 서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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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베를린=엄효현 통신원】2차 대전 직후 「베를린」재건의 건축책임자었던 세계적 건축가이며 도시계획가 「한스·샤라운」옹이 지난 25일 서「베를린」의 그가 설계한 주택단지 안의 자택에서 서거했다. 독일인들이 새로운 음악의 발생을 가능케 했다는 「베를린·필하므닉·콘서트·홀」을 남겼으며 대표적 주택단지 등을 설계했으면서도 「샤라운」옹은 자신에 관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의 서거는 그의 건축예술에 대한 새로운 평가의 계기가 되고있다.
「시카고·트리뷴」이나 「쾨니히스뵈르거」증권시장의 설계에서는 마치 해부해놓은 인간의 기관처럼 그는 건축구성을 했다. 영화관의 설계에서는 또 인간의 위장에 비유하여 영양섭취·소화·배설이 원활하게되도록 배치했다. 이러한 그의 예술세계를 통틀어 일관하는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그는 예술적 「팬터지」로 건축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집중적이고 조형적인 상상력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다음은 사회적 「팬터지」다. 그는 주택단지 등에 항상 관심을 갖고 돈 많은 사람들의 집은 한번도 설계한 일이 없다. 남독「슈투트가르트」시나 「베를린」에는 그가 설계한 주택단지들이 많다.
수많은 수상심사에서 그의 작품은 너무 현대적이었고 그 속에서는 어떤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심사위원들은 말하고 있다. 그에게 상금을 주기로 결정한 심사위원들도 자신들의 집은 다른 사람에게 설계를 부탁해야했다.
1893년 북독의 「브레메르」에서 출생한 그는 「베를린」공대를 거쳐 1차대전 후에 「오스트프로이센」재건에 참여했으며 29년 주택전시회에서 두각은 나타내기 시작하여 줄곧 「베를린」을 무대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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