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임피 돗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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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윤기가 번지르르 하며 곱게 짜여진 임피세석.
찌는 듯한 날씨라도 앞뒤가 확 트인 대청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부채를 들면 등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진다.
전북 옥구군 나포면 주곡리 원주곡 마을은 약 2백년 전 이조 말엽부터 왕골 껍질로 돗자리를 만들어 온 임피세석의 원산지.
원주곡 주민들은 대대로 돗자리를 짰으며 근근 우리 나라 돗자리의 명맥을 이어오다 68년부터 조합을 결성, 새로운 농가부업으로 기틀을 잡아 돗자리 짜기에 여념이 없다.
세석의 원료인 왕골은 2월 하순께 비닐·하우스에 씨를 뿌리고 4월말에 이식한다.
6월 중순 왕골의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기 전 왕골을 거둔다. 너무 자라 버리면 껍질이 부드러운 맛을 잃기 때문이다.
뿌리와 잎사귀 등을 제거한 뒤 송곳처럼 생긴 날카로운 뜸대로 크고 작은 것에 따라 왕골 밑둥이를 7∼15개씩으로 갈라놓은 것을 손으로 잡아 짜갠다.
이 완피를 햇볕에 10일 쯤 말리면 우유빛처럼 뿌옇게 탈색된다.
이 탈색된 완피를 1백 98개의 사합사가 선 돗자리 틀에 잣대로 하나씩 집어넣고 그 때마다 받이대를 한번씩 내려친다.
이곳서 생산되는 돗자리 원단은 폭 1m 8㎝, 길이1m 80㎝인 장대석부터 길이는 역시 1m80㎝이나 폭이 70㎝인 소석까지 5가지 종류. 각 종류마다 품질에 따라 특등, 1, 2, 3, 4, 5등의 6등급으로 나눠진다. 등급 매기는 기준은 규격이 잘 맞는지, 색깔이 깨끗하고 뿌연 우유빛인지, 완피의 두께가 고른지, 날줄이 사합선 이상인지. 마지막 손질이 완전한가, 제직이 잘 됐는지를 중점적으로 검사한다.
현재 경남거창·경북 금릉·전남곡성 등지에서도 돗자리를 만들고 있으나 완피의 탈색, 뜸대의 사용, 짜는 기술 등에서 원주곡을 따라 올 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자부 겸 자랑이다. 보통 한 사람이 한잎 짜는 게 고작.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대석 1등품의 경우 1천 5백원에 조합에 팔려지고 도매상에서 자리 양쪽 귀에 색든 천을 붙이는 등 약간의 가공을 한 후 시중에서 3∼4천원을 부르고 있다.
요즈음 이곳은 완피가 모자라 1천만여원 어치를 다른 곳에서 사와 돗자리를 제품화한다.
작년 이 마을 75호의 총 수입은 2천 3백여만원으로 조합에 집계됐다. 원주곡에서 4대째 돗자리를 짜고 있다는 송창인씨(52)는『돗자리를 작품으로 많이 내는 것은 좋으나 옛 조상들이 솜씨 있게 짜던 세석은 차츰 자취를 감추는 게 사실』이라고 아쉬워했다. <글 채영창 기자|사진 박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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