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카지노 논의해야" vs "사회 정서상 시기상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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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주 관광차 서울을 다녀간 중국인 사업가 왕차오(王超·46)는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관광은 낮에는 고궁과 면세점, 저녁엔 서울 명동을 다니는 ‘지루한 쳇바퀴’ 같았다”며 “마땅히 지갑을 열 만한 흥밋거리가 없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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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느낀 지루함은 ‘숫자’로 나타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114만여 명, 최근 5년간 연평균 11.6% 늘었다. 하지만 국내 관광·레저 시장은 2009년 40조1000억원에서 2011년 45조2000억원으로 연평균 6.1%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레저 분야는 같은 기간 24조원에서 23조원으로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골프·스키장과 갬블링(도박)·베팅업의 매출 증가율은 각각 -1.6%, -4.2%였다. 마리나베이 샌즈 리조트가 개장한 지 2년 만에 싱가포르 관광 매출이 41% 늘었다는 분석과 대조된다.

 현대경제연구원 조규림 선임연구원은 “외국인 고소비층이 선호하는 인프라를 선진화하고 콘텐트를 다양화해야 관광·레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일자리 창출, 관광·레저 산업 활성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복합리조트(Integrated Resort)가 첫손에 꼽힌다. 복합리조트는 카지노를 기반으로 호텔· 쇼핑센터·공연장 등을 포함하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일컫는다.

 복합리조트 투자처로 가장 뜨고 있는 지역이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종도다. 지금까지 이곳에 투자 의사를 밝힌 국내외 기업은 줄잡아 대여섯 곳에 이른다. 연간 이용객 3600만여 명, 비행시간 4시간 이내에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몰려 있는 인천공항 입지 덕분에 큰손들이 몰리는 것이다. 파라다이스는 지난 10월 일본계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세가사미와 손잡고 파라다이스세가사미를 설립해 2017년 ‘파라다이스시티’를 개장할 계획이다.

 일본계 파친코 업체인 오카다홀딩스의 한국 자회사인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 미국 6위 은행인 PNC파이낸셜그룹도 조 단위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아시아 최대 부동산 재벌인 리포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기반을 둔 시저스가 합작한 LOCZ코리아도 출사표를 던졌다. 올 초 방한한 셸던 애덜슨 샌즈그룹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카지노 허가가 나면 단독으로 최대 60억 달러(약 6조3000억원)를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이와 궤를 같이해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출입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Open Casino)’ 허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이 잇따라 대대적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은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 허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투자를 시작한 복합리조트 업체들도 당장은 ‘외국인 전용’으로 승인을 받지만, 장기적으론 오픈 카지노 사업을 선점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오픈 카지노는 국민적 공감대 조성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논의를 시작할 시기”라고 진단한다.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은 “2020년 올림픽을 앞두고 카지노 사업 승인을 추진 중인 일본, 강원랜드에 대한 내국인 독점 기간이 종료되는 2025년 이전에 오픈 카지노 논쟁이 공론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도박 중독 우려, 국내 유일한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의 반발 등으로 아직 뚜렷한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사회적 논의 없이 경제적 효과 때문에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라고 밝혔다. 한국카지노업관광협회 권영기 사무국장은 “사회 정서상 오픈 카지노는 시기상조”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내국인에 대해서는 출입을 보다 엄격히 관리하고, 예방·치유 시스템을 갖추면 레저산업도 키우고 세수 증대도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론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맥킨지코리아 서동록 파트너는 “싱가포르의 경우 카지노를 개설하기 수년 전부터 사업 허가부터 사후관리까지 법·제도를 정비했다”며 “내국인 출입에 대한 시간·금액 제한, 도박 치유 프로그램 등을 전제조건으로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숙명여대 박내회 경영대학원장은 “불법 하우스 도박이나 인터넷 도박 규모가 4조6000억원에 달한다”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흡수할 경우 지하경제 양성화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도박 산업을 감시·통제하는 정부기관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대 제니퍼 로버츠(법학) 교수는 “이를 통해 체계적인 도박 통제,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며 “아울러 복합리조트를 만들면서 수익금의 일정액을 도박관리자금으로 환수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재·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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