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의 명화 한국회화 근5백년 전에서(9)-석창 홍세섭 작 야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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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뛰어난 그림을 그렸으면서도 그 이름이 묻혀버렸거나 옳게 평가되지 못한 고가들이 적지 않다. 즉 이조시대의 사대부·문인 등 지식인 사회에는 뛰어난 재질을 발휘한 여기화가들이 적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화가로서 이름나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거나 또 특별한 지기지우가 아니면 그림을 주지 않아서 유작이 널리 전해지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당시의 화단에서 상궤를 벗어난 개성 짙은 그림들이 이해되지 못한 채 접어 넘긴 까닭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석창 홍세섭은 그러한 일명 지식인화가중의 한 사람이다. 그 이름이 일부에 알려져 있었거나 그의 작품이 사진으로 소개된 일도 있었지만 그의 그림의 좋은 특질이 지적되어서 알려진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제대로 대접을 받아왔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이 「야압도」는 특별히 주의를 끄는 신선한 그림으로서 그가 보여준 용묵의 묘에서 우선 참신한 감각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대담한 구도도 당시 화단의 의표를 벗어난 것으로서 오늘날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서구풍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수묵의 구사에서 담채 이상의 산뜻한 느낌을 받는 것도 반길성이 있고 또 들오리 한 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물살을 헤치며 늪을 노니는 정경을 그 정수리 위에서 부감한 묘사법도 의표를 찌른 참신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오리의 진행에 따라 일어나는 물살의 중첩을 엷은 수묵으로 계선지어 표현해서 신기할 만큼 좋은 효과를 거둔 것도 이 작가의 조형역량의 비범함을 보여준 것이다.
석창은 남양 홍씨로서 자는 현경이었다. 순조 32년(1832년)생으로 문과에 급제, 고종대에 승지벼슬을 지냈으며 상모절지와 산수화를 잘했다고 전해진 사람이었다. 【최순우<국립박물관학술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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