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얼린」의 귀재 「하이페츠」반 은퇴 10년만에 연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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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반 은퇴 중에 있는 세계적「바이얼린」의 거장 「야샤·하이페츠」가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뮤직·센터」에서 돌연 연주회를 가져 미국 내 음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 어떤 연주가도 따를 길 없는 탁월한 기교와 표현으로 전세계 음악 「팬」들을 전율시켜온 이「바이얼린」의 귀재는 6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대학음악계에 몸을 담아왔었다.
지난 10년간 그의 연주를 「레코드」로만 들어온 그의 「팬」들은 71세의 이 노장 「바이얼리니스트」가 다시 활을 잡았다는 소식에 더할 수 없이 기뻐했지만 곧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하이페츠」가 가진 연주회는 그의 연주가로서의 재출현을 뜻하는 신호로서가 아니라 스승으로서 제자들을 위한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귀중한 기회」를 놓칠세라 전국에서 다투어 예매권들을 사들이는 바람에 음악회 수익금은 당초의 예상액을 훨씬 상회하는 1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하이페츠」는 『대학을 위해 더 이상 구걸하러 다니는 일은 이제 지긋지긋해졌어. 하지만 돈이 없으면 우수한 아이들이 전부 동부로 「픽업」되어 갈 터이니 대책은 내가 적극적으로 돈을 벌어보는 수밖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공표하고 싶었던 때문』에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중요한 일』이란 62년 이래로 그가 같은 「러시아」태생의 「첼리스트」「피아티고르스키」와 함께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위해 특별 「레슨」을 하고 있는 일을 말한다.
「하이페츠」가 세계 제1의 연주가로서보다는 이같이 뒤에서 연주지도를 하는 일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태도는 그의 스승 「아우어」를 연상하게 한다.
「아우어」는 「러시아」의 최고급 「바이얼리니스트」로서 「오데사」 국립음악원의 교수가 되어 「하이페츠」외에도 「엘만·톤」이라는 독특한 음색의 소유자인 「미사·엘만」을 배출, 20세기 「바이얼린」의 쌍벽을 「아우어」일가인 「하이페츠」와 「엘만」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5살매 「러시아」음악계에 「데뷔」하여 대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러시아」혁명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 약관 18세에 대가로서 미국 음악계에 재「데뷔」한 이후 오늘날까지 화려한 연주가로서의 명성 속에 살아온 「하이페츠」가 그 명성을 묻어둔 채 무명의 젊은 연주가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일은 무언가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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