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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의 야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비즈니스」의 야수』-. 이런 소책자가 있다. 편집자는 「하비·매튜소」(Harvey Matusow)라는 낯선 영국인. 저자는 따로 없다. 원제는 『The Beast of Business』-.
제목보다는 그 아래의 만화가 더 인상적이다. 무슨 마술상자 같은 데서 손이 불쑥 솟아 나와 영국신사의 허리를 한줌에 움켜쥐고 있다. 신사는 혼비백산, 「실크·해트」며 우산을 허공에 내던지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부제를 보면 비로소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컴퓨터」 폭력의 기록』.
「매튜소」라는 사람은 영국 남동부의 「에섹스」군 「잉거트스턴」시에 사는 45세의 무명씨. 그러나 「정보처리기계폐지 국제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컴퓨토피아」(컴퓨터 이상향) 시대에 감히 정면으로 도전한 문명의 반항아인 점에서 주목을 끈다. 그 회원은 전세계에 4천여명. 그 가운데는 「캄보디아」의 전 국가원수 「시아누크」와 같은 유명인도 포함되어 있다. 문제의 소책자는 회원들의 기고로 엮어졌다. 「컴퓨터」의 체험적인 폭력들을 항의·고발하고 있는 내용은 더러 폭소를 자아낸다. 몇 가지 소개하면-.
영국의 한 사제가 「컴퓨터」에 이런 질문을 냈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컴퓨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대답했다. 『지금은 존재하지만…』-.
「컴퓨터」에 또 영문의 번역을 의뢰한 일이 있다. 『보이지 않는 자는 마음에서도 멀다』(out of sight, out of mind). 노어로 번역되어 나온 글은 걸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치광이』.
이런 이야기는 또 하나 있다. 「영혼은 강하고 육체는 약하구나』하는 성경구절을 번역시켰다. 「컴퓨터」에서 노어로 번역되어 나온 글은 뜻밖이다. 『화주(spirit)는 독하고 고기(육체)는 연하구나』-.
「런던」의 어느 가정집엔 노상 전기 요금청구서가 날아왔다. 청구금액은 「제로」(0). 당연히 요금을 물지 않았다. 어느 날 단전이 되었다. 이유는 「0」(영)「파운드」의 요금을 물지 않았다는 것. 「컴퓨터」의 오차다.
최근 우리 나라의 일부 학교에서도 「컴퓨터」를 도입, 시험의 출제와 채점에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인격적 교육에 비인격적 기계를 「매치」시킨 것이다. 명분은 능률과 정확.
그러나 교육 속엔 당연히 인격적인 것까지도 포함된다. 시험지의 채점은 단순히 그 「점수」를 알아내는 데만 목적이 있지는 않다. 답안지를 작성하는 태도나 그 심적 동기도 선생은 시험지를 통해 관찰해야 한다. 기계가 뚝딱 해치울 일은 결코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서의 선택」을 강요받는 「컴퓨터」 채점식의 교육은 현대문명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컴퓨터」에 의한 교육의 능률화와 비인격화는 과연 어느 것이 교육적일까. 「컴퓨터」만능엔 그런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아 둘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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