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 비문 탁본 조작설 동경대 사학대회서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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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경=박동순특파원】만주집안현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비문이 90여년전 일본군인에 의해 발견, 소개될 당시 일부 변조되었다고 재일 한국인 고고학자 이진희씨가 폭로해 학자들간에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12일 동경대에서 열린 사학대회에서 이씨는 1880년 이 비석이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자 당시 군사지리 연구차 이 고장에 와있던 「사꼬」(사구경신) 대위가 탁본을 뜨면서 고대 일본이 백제와 신라를 정벌한 것처럼 비문의 일부를 그릇 옮겨놨고 또 1900년을 전후해서 일본군 참모본부가 이 사실을 은폐키 위해 비석전면에 석회칠을 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광개토왕능비연구』라는 방대한 저서를 일본에서 간행한 바 있는 이씨는 문제된 최초의 탁본을 비롯하여 그후에 계속 이루어진 50여종 탁본과 사진을 제시하면서 그것들이 조금씩 달라져 있는 점을 연구해본 결과 그같은 당초의 범죄사실을 규명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변조된 비문의 예로서 『왜이신묘년내도해파백잔□□□나위신민』 즉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잔(백제)과 신라를 정벌했다는 구절 가운데 원래의 비석에는 「내도해」나 정벌이란 뜻의 「파」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압록강 중류 북쪽의 고안성집안현의 궁벽진 곳에 있는 이 비석은 고구려가 이곳에 도읍했던 마지막 시기에 광개토왕의 치적을 새겨 놓은 것.
이 대회에서 이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경도의 고고학자인 「후루따」(고전식언)씨는 ⓛ비문을 기왕변조할 바에는 일본 참패 문귀(왜불궤침입·왜구지멸 등)를 그냥 두었을리 없고 ②「사꼬」대위는 직접 탁본을 든게 아니라 남이 가진 것을 빼앗은 것이란 점등을 들어 이씨의 주장에 반대했으나 동경대 「이노우에」(정상광정)교수는 『다시 검토해 본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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