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신라의 영지 경주 남산 대유적-40년만에 재조사 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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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화재 관리국은 경주 남산의 방대한 유적과 유물에 대한 재점검에 착수했다. 미록정토라는 노지로서 숭상되던 신라시대의 이 성산은 남북 8㎞, 동서 12㎞, 30여 계곡의 험난한 암산 속에 60여개소의 옛 절터를 비롯해 70구가 넘는 석불이며 그밖에 탑·석등·주춧돌과 청일 등이 무수히 산재하는 불교유적의 밀집지대이다. 이들 남산불적은 일제 때 처음 조사돼 l930년 보고서가 나온 이래 이번 두 번째로 다시 일제조사가 실시된 것이다.
문화재연구실 이호관씨가 이끄는 이번 조사반은 정영호(단대박물관장) 윤용진(경북대 박물관) 전문위원과 경주지방 문화재를 가장 많이 답사해온 당지 최남주씨를 초청했고 그밖에 실측 및 촬영반으로 구성, 25일간의 1차 조사를 마쳤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11월초에 걸친 금년도의 답사구역은 해발 4백68m의 남산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 서부지역 남산리의 국사곡으로부터 시작해 경주시가쪽의 남천을 돌아 양산으로 향하는 길목의 비파곡까지 25개의 계곡과 그에 따른 능선을 포함했다.
이 넓은 지역에서 이번 조사반이 「체크」한 유적·유물은 90여. 그 중엔 일제 때의 보고서 『경주남산불적』에 포함돼 있지 않은 절터만도 7개소에 달하고 있으며 그밖에 탑돌과 석등재·불상을 안치했던 대좌·석정의 뚜껑돌 등 다듬어진 석물을 무수히 찾아냈다.
새로 확인된 절터들은 옥정곡에서 「사제사」란 글씨가 쓰인 기왓장으로 옛 문헌의 그것이 분명해진 것을 비롯하여 비파곡에 2, 남산리에 2, 입곡·장창곡 및 경애왕릉 인근에서 각각 1개소씩이고, 앞서 수습된바 있는 「남산신성비」의 원위치를 식기곡의 김언용씨 집에서 밝혀낸 것도 커다란 소득의 하나이다.
삼화령 삼존불(현 경주박물관)을 본시 봉안했던 곳이 돌로 쌓은 감실이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엔 다시 명막곡과 미륵곡에서 각각 불교전래 초창기의 석조감실 유구가 나타나 조사반은 예의 주목하고 있다. 특히 미륵골 보제사에 있는 감실 지붕이던 팔작옥개석은 신라시대의 건축을 연구하는데에도 매우 중요한 암시가 될 것으로 보이며, 이들 옛 감실의 석재들을 통하여 현존하는 토함산 석굴암의 전신도 좀 더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인다.
남산리에서 새로 확인된 절터(현 농가의 마당)에 유존하는 8각의 연화형대석은 거대하고 정교한 조각품이 있었던 자리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 대석은 직경이 약 2㎞로서 그런 기초부분의 초석이 흔히 적당히 다듬은 것임에 비하여 아주 정교할 뿐더러 희귀한 연꽃잎 모양이다.
삼릉계에서는 근년에 토사로 인해 거대한 석불좌상(약3m)이 드러났는데 어깨와 가슴의 「볼륨」이 신라시대의 당당한 거작. 다만 목이 없어 유감이나 인근에 매몰돼 있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다.
또 서출지에는 거의 완전하게 복원이 가능한 석등재를 비롯하여 불상좌대가 있고 복흥곡에 석탑의 옥개석 1매, 기암곡 망월사에서는 안상이 있는 보기 드문 옥개석도 발견됐다.
조사반은 이 외에도 포석계 약수계 해목령 윤을곡 명막곡 입곡 선방곡 용장곡 산아당 사곡 탑곡 철와곡 대지암곡 등에 대해서도 일팔 답사함으로써 현상을 파악하고 또 실측이 미비한 부분에 대하여서도 보완 조처했다.
이러한 대대적 조사를 서두르게 된 것은 우주종합개발 10개년 계획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40여 년 전의 조사에 누락이 많았던데 직접적인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64년 정영호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이번 답사지역 안에서만도 9구의 불상과 그 밖의 석재들을 20점이나 새로 찾아낸바 있는 것이다.
탑곡의 석불좌상, 미륵골의 마애 여래좌상과 보살좌장 및 입상, 능곡의 불두, 삼능곡의 마애불두, 창림사지의 석불좌상, 배반리의 토불좌상, 국사곡의 석탑재, 남산리의 석등재, 대지암곡의 마애불, 그리고 남산 신성비와 창지비의 빗돌들이 그것이다.
남산유적으로 이미 조사된 것 가운데 우수한 조각품이면서 소형인 것은 더러 경주박물관에 옮겨 놓았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산 속에 그냥 있다. 불상의 경우 10점은 이전해 지정 조치했지만 원위치에 현존하는 것만도 46구. 대개 암벽에 새긴 것(마애불)이지만 도불로 조각한 것도 있으며 또 지정품도 적지 않았다.
조사반은 이번 답사를 통해 유적 유물의 현상파괴를 그리 지적할만한 것이 없지만 『절터마다 민묘(암장)가 범람하는 것은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말했다. 이들 불법 민묘는 절터의 원상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부근의 옛 석재들을 마구 깨뜨려 이용함으로써 그 폐단이 크다고 이호관씨는 지적했다.
문화재관리국은 내년에 남산의 나머지 동부와 인근산줄기로 확대해 조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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