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2기의 대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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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4년 전 「닉슨」 대통령이 처음 당선된 것은 한국인들이 미국 정보 함 「푸에불로」호 납북 사건의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시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은 「닉슨」 대통령이 북한 정권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대통령이 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한 기대는 단순히 한국인들의 희망적인 관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닉슨」 자신의 입에서 나온 선거 유세 중의 발언에서 유래한 것이다.

<「닉슨·독트린」이 공약>
68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푸에볼로」호 사건과 월남 구정 공세의 북새통에서 막이 올랐는데 「닉슨」은 「존슨」 행정부의 「푸에볼로」호 사건 처리 태도를 공격하면서 『미국에 대한 존경심이 형편없이 떨어져 군사력에 있어 4등 국가 밖에 안 되는 북한 정도가 공해 상에서 미국 선박을 나포했다는 것은 이 나라가 새로운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증거다』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한국이 「닉슨」에게서 북한에 야무진 본 때를 보여줄 미국 대통령을 기대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더우기 46년 하원 의원으로 출발한 「닉슨」의 22년간의 정치 생활이 남긴 「냉전 투사」라는 반공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그것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자세의 대통령이라는 「닉슨」 기대는 곧 무너졌다. 69년4월 EC-121 정찰기가 다시 북한에 의해 격추됐다. 미국의 합동 참모 본부는 「푸에볼로」호 사건 때처럼 북한에 대한 즉각 보복을 건의했다. 그러나 「닉슨」의 반응은 4일 뒤에 나온 엄중 경고 성명으로 끝났다. 「닉슨」은 대통령으로서 직면한 것 위기를 신중하게 대처한 것이다.
「닉슨」의 그러한 반응이 그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의문을 남겼다. 3개월 후 그런 의문은 풀렸다. 1969년7월25일 「닉슨」은 그의 유명한 「닉슨·독트린」을 발표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공약의 축소를 의미하고, 구체적으로는 미군 감축, 미군 기지의 축소 같은 것을 의미한다.
EC-121 정찰기 격추 사건은 「닉슨·독트린」 발표 준비 과정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닉슨」은 4일 동안 숙고한 끝에 그 사건을 『신 「아시아」 정책』의 울타리 안에서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닉슨·독트린」 실천은 중공과의 화해, 그리고 소련과의 관계 개선의 전제가 되고, 미·중공과 미·소 관계 개선은 월남 휴전의 전제가 된다는 것은 이미 일어난 사태로 입증됐다.
「닉슨·독트린」의 수행을 위해서는 월남 휴전이 앞서야 하고, 월남 휴전을 위해서는 「닉슨·독트린」의 수행이 앞서야 한다는 역설이 「닉슨」의 「아시아」 정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월남을 축으로 한 관계>
한국은 한·미간 교섭으로 항상 『한국의 특수 사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닉슨」 행정부의 지난 4년간의 반응은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EC-121 사건 처리 태도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닉슨」 행정부의 한국 정책은 중공과의 화해, 그리고 월남전 수행을 축으로 한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월남 휴전 성립과 동시 출발한 「닉슨」의 2기 임기중의 한국 정책은 필연적으로 양적인 수정을 받게 될 것이다. 당장 눈앞에 닥치는 것이 주한 미군 병력 수준 문제다.
74회계연도 중에 미군 추가 철수가 있을 것인지는 아직 미정이다.
그러나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북경 회담과 남북 회담이 「베트남」 이후의 한국을 보는데 있어서 미국의 입장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 관리는 미·중공 「데탕트」이전까지만 해도 월남전이 끝나면 중공이 한반도에서 새로운 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생각해 왔으나 지난해 후반기부터 이러한 견해는 뒤집혔다고 말했다.

<한반도 위기 해소 지적>
한국의 외교 소식통은 「닉슨」이 재선되면 한국에 추가 원조를 제공하도록 행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노라는 약속을 「키신저」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록 「키신저」가 진지하게 그런 말을 했다 해도 주머니 줄을 쥐고 있는 것은 민주당 의원들이다.
따라서 「닉슨」 행정부와 민주당 의원들간에 예상되는 상당한 마찰 때문에 대외 군원이 적지 않은 수난을 받을 것도 같다.
「닉슨」의 두번째 임기에는 미국의 대북한 정책이 현실 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고위층 관리들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봄부터였다.
아직 미국의 공식 입장은 북한의 반미 태도가 완화되는 것이 선결 문제고, 한국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데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 정부 소식통은 미국의 업계가 북한에 대한 금수 조치를 완화하도록 정부에 강한 압력을 넣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제적인 북한 진출이 미국 업계를 자극시켰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주한미군이 철수한 뒤면 미국과의 통상을 완화한다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통상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양적으로 미미하고 「닉슨·독트린」이라는 보다 큰 목표의 달성에 본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할 성질의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요컨대 「닉슨」은 지난 4년 동안 다져 놓은 토대 위에서 앞으로 4년 동안 「인도차이나」 휴전을 성립시키고, 중공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며, 일본에 상당 부분의 역할을 넘겨주면서 월남전이라는 이름의 다리를 통하지 않는 새로운 한·미 관계의 막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군소국 문제에 눈 돌려>
「닉슨」은 대평 일본 외상과의 회담 때 『미국과 일본과 같은 강대국은 강대국 흥정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군소 국가의 문제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4년의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면 「닉슨」「키신저」「팀」의 강대국 정치는 계속될 것 같고 군소국 문제는 강대국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항상 남아 있다.
새로운 한·미 관계의 테두리는 73년에는 실현됨직한 「닉슨」 한국 방문을 중심으로 틀이 잡힐 것 같다고 69년8월 「샌프런시스코」 정상 회담 때 박 대통령은 「닉슨」 방문을 요청했고 「닉슨」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그 시기는 「닉슨」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내년 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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