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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긴장의 동북아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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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 세대 이상 지속됐던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가 부러워했던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바탕이 됐던 바로 그 지역 평화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일본과 한국이 통제해 왔던 영역을 포함한 새로운 자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언한 중국에 대한 지역의 반발은 오랜 경쟁 관계, 영토 분쟁, 그리고 역사적 대립이 갈수록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로 보인다(중국은 이번에 확대한 자국 ADIZ는 일본의 ADIZ와 일부 겹치며, 한국 해군이 수시로 훈련하며 한국의 해양종합과학기지가 있는 이어도 주변 해상까지 포함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 사이의 관계 악화는 지역 안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것은 물론 서울과 도쿄 모두와 중요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지역에 주요 이해관계가 있는 미국의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대부분의 동북아 지역 문제는 뿌리 깊고 긴 역사가 있는 데다 감정과 분노가 해묵은 갈등을 계속 되살리는 중요한 불씨 노릇을 해 왔다. 이 지역이 분쟁을 피하려면 비극적인 일이 많았던 과거사 유산을 처리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중국·일본, 그리고 한국은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이 걸려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실패는 절대 용납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현재의 긴장을 완화하고 지역 내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한 원칙과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보고서를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이 지역 긴장완화를 위해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면서 중국에 대해선 동맹국들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밝히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지난주 아시아를 순방한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의 주요 어젠다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 지역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재균형’(아시아 중심) 정책의 신뢰성에 대한 중요한 시험이 될 것이며 다음 세대까지 동북아 지역이 평화·안정·번영을 누리게 하는 데 중요하다.

 최근 중·일 관계와 한·일 관계의 악화는 이미 골칫거리가 된 동북아 지역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의 CADIZ 확대는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사실 동북아 지역에서 상호 경쟁과 어려운 관계는 그동안 이 지역 국가들 간의 관계가 민족주의적 대립과 역사적 반목, 과거의 침략과 점령의 기억, 그리고 영토 분쟁으로 점철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이 지역은 그런 상황에서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평화와 전대미문의 번영을 누리는 시대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낡은 적개심이 새로운 옷을 입고 이 지역 관계를 좌우하게 되면서 지역 내 협력관계가 삐걱거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동북아는 새롭게 부상한 일본이 어떻게 했는지를 똑똑히 지켜봤다. 일본은 이 지역을 주도하면서 서양 제국주의자 중심의 기존 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대체했으며 그 결과 세력 중심을 바꿔놓았다. 이러한 세력 축 이동과 일본의 야망은 침략과 식민지배는 물론 미국과의 충돌이라는 비극까지 낳았다. 이것이 20세기 동북아 지역의 비극이라면 이제는 우리가 현재 21세기 버전의 동북아 지역 비극을 보는 게 아닌지를 묻는 게 공정할 것이다. 이 지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세력의 역할을 하는 나라가 이번엔 중국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