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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토 비밀협상 농담과 익살의 만화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외교도 전쟁이다. 전쟁의 수행을 위해 온갖 무기와 다양한 전략이 응용되듯이 외교에도 무수한 수단방법이 동원된다.
20여 차를 거듭한「키신저」-「레·둑·토」간의「파리」비밀협상은 그 회담의 비중도 비중이려니와 두 당사자들이 모두 발군의 경험과 기지를 가진 익살꾼들이라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푸짐한 화제를 뿌렸다.
협상 순간의 이야기들이 먼 훗날 비화로나 밝혀지던 19세기「메테르니히」식 밀실외교와는 달리, 비록 그 과정이『비밀』이라는 딱지는 붙었지만「키신저」-「레·둑·토」간의 행적은 20세기「매스컴」들의 극성과 또 그『기밀』자체를 전략으로 구사하는 양측의 술수로 인해 이내 밝혀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키신저」와「레·둑·토」의 공통점은 둘다 노련한「유머」를 잘 구사한다는 점이다.
성공을 가져온 최근 협상 중 막간을 이용한「키신저」가『「토」선생,「하버드」대학에 오셔서「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강의하시지 않겠소?』라고 물었을 때「토」는『「키신저」박사, 당신은「하노이」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가르치기로 하고, 우리 교환교수계획을 세웁시다』라고 응수했다.
때에 따라선 이런 농담이 오가고 나면 둘은 서로 50분간씩 양국의 정치제도를 강의하기도 한다. 물론 평화협정의 잠정적인 타결을 본 지난 19, 20차「파리」비밀협상도 농담과 흥정이 얽힌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 같은 회담분위기를 추적해온「뉴스위크」의 백악관 출입「헨리·허버드」기자는「키신저」의 외교「테크닉」을 이렇게 전했다.
「키신저」는「토」에게『당신에겐 역설적으로 들릴는지 모르지만「닉슨」대통령은 협상의 성패여부와는 관계없이 선거에서 압승할 것이오.「맥거번」과「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니 기다려봐야 별 수 없을 거요. 미국의 여론조사를 보시오』라면서 말을 꺼냈다.
이렇게 되자「토」의 태도가 전보다 훨씬 누그러지더라는 것이다. 비밀협상 기간 중 월맹이 미군포로 3명을 전례 없이 완벽한 경호 아래 석방한 것도「키신저」의 이와 같은 외교적 압력 덕분이라는 것.
「키신저」는 기회만 있으면「닉슨」을 끌어들이는 수법을 썼다. 미국의 대통령은 누구나 당선 후 1년간은 거의 모든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밀월시절을 갖는다는 것, 그렇게 되면「닉슨」은 훨씬 고자세로 나올 것이라는 것.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닉슨」이 선거전 타결을 원하는 것은 미 역사상 최대의 압승을 거두고 싶어서라는 것 등등….
「키신저」가 이런 말을 강조하는 것은「하노이」에 대한 은밀한 협박이다.
특히 그는 취임 후 지금까지「닉슨」의 월남정책을 들어,「닉슨」은 어떤 위험부담이 따르더라도 편의에 따라 마음먹으면 해치우는 인물임을 지적했다. 그러니 압승하고 나서「닉슨」이『어떤 조처를 취할지 아느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을 해가며「키신저」는「토」에게 친절한 고문의 역할도 하고 신경질적인 아저씨노릇도 했다.
경우에 따라선 현대전의 논리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월맹의 끈질긴 항전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을 찬양하기도 했다.
또「키신저」는 월맹이 74년까지 재차 전면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미국 CIA보고서를「토」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CIA 보고서 내용을 보이고, 과연『너희들이 그것을 반박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것이「키신저」의 배짱.
어떻든 길고 지루한 협상을 벌여오는 동안「키신저」와「레·둑·토」는 서로 서로 농담을 나누고 술을 마시는 존경하는 친구사이가 되어버렸다. <뉴스위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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