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짝퉁과 진품 헷갈리게 하는 사진의 장난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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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호 28면

2011년 미국 연방우체국이 크게 망신 당한 적이 있다. ‘자유의 여신상’ 얼굴 사진을 담은 새 우표를 출시했는데, 그 사진이 진짜 ‘자유의 여신상’이 아닌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있는 이른바 ‘짝퉁’을 찍은 걸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최근 이 사건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라스베이거스의 모작을 만든 조각가가 “연방우체국이 내 작품의 사진을 허락 없이 우표로 발행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지난주에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 사이

모작 주제에 저작권을 주장하다니 웃기는 일이 아닐까? 그러나 미술저작권 전문가인 김형진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창작이 가미된 부분, 즉 원작에 없고 모작에만 있는 곳이 있다고 인정되면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있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작 조각가는 원작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 점에 대해 그는 거리낄 게 없다. 저작권 보호 기간이 작가 사후 70년인데, 원작을 만든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1904년에 타계했으므로 원작의 저작권이 이미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저작권법의 요지경 같은 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애초에 연방우체국이 원작 대신 복제품의 사진을 우표에 실었다는 점이다. 어쩌다 이런 실수를 했을까? 사진 서비스 업체에서 구입하면서 그만 가짜를 찍은 걸 골랐다고 한다. 이게 주목할 점이다. 연방우체국 직원들에게 사진이 아닌 실물을 보여주었다면 쉽게 모작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보니 원작과의 차이가 흐릿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진이 현실 이미지의 충실한 재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제품을 찍은 사진, 즉 원본의 재현을 다시 재현한 것은 양쪽을 헷갈리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국내 모텔의 ‘자유의 여신상’ 모작을 찍은 한성필의 2007년 작품(왼쪽)과 라스베이거스 모작의 사진을 실은 미국 우표(2011)

이렇게 우리가 믿는 ‘사진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고 진짜와 가짜, 원본과 복제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게 만드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사진작가 한성필(41)도 그중 하나다. 그는 국내 모텔, 외국 유원지 등에 있는 수많은 ‘자유의 여신상’ 모작을 시리즈로 사진에 담아 왔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 중인 ‘한-아세안 현대 미디어아트전’에는 이 시리즈 중 필리핀에서 찍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에서 아시아의 문화식민주의적 현실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정치사회적인 것과 별도로 사진 작품이 재현의 재현이면서 또한 독립된 원본이기도 한 흥미로운 상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블루스퀘어에서 가까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개념미술적 사진의 대가 스기모토 히로시(65)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작 중에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왕비들의 초상이 있는데, 보면 참으로 묘하다. 사진은 사진인데, 옛 의상을 입은 현대인 모델을 찍었다고 보기에는 얼굴이 옛 초상화와 너무나 똑같고, 옛 초상화를 다시 사진으로 찍었다고 보기에는 확실히 3차원적인 인물을 찍은 것 같아서 말이다. 사실 이 사진은 한스 홀바인이 그린 옛 초상화를 바탕으로 만든 밀랍인형을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에서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왕비들은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만 같다. 하지만 실물의 재현(초상화)을 다시 재현한 것(밀랍인형)을, 또다시 재현한 것(사진)으로 그 세 겹 복제에 의한 산물은 역사적 인물의 실제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즉 이 사진 작품은 역사 자체의 허구성을 함축한다. 스기모토는 인터뷰에서 “역사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즉 우리가 아는 역사도, 우리가 실제의 충실한 재현이라고 믿는 사진도, 원본과 동떨어진 복제, 혹은 원본 없는 복제인 시뮬라크룸(Simulacrum)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우체국은 2011년 당시 문제의 ‘자유의 여신상’ 우표를 회수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어쩌면 원본의 사진이든 복제품의 사진이든, 사진 자체가 시뮬라크룸일 뿐이라는 철학적 사유에서 온 결정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모작 조각가에게 저작권 소송을 당하게 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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