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우」의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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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휴전을 한발 앞둔 월남의 「티우」대통령은 의연히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 「스탠리·카노」기자는 그것을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컬한 반복이라고 말한다. 20년 전, 한국휴전 당시의 일들이 바로 지금 월남에서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 5월12일, 경무대(당시)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의 휴전을 두 달 남짓 앞둔 무렵이다.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했다. 그는 막후의 각본대로 『정전하는 것이 한국에 유리하다』는 설득을 하려는 것이었다.
이 박사는 단호히 그것을 거부했다. 「클라크」는 실의에 차서 물러 나왔다. 이번엔 「테일러」장군이 그 뒤를 따라 이 박사 앞으로 갔다. 이 박사는 「테일러」의 견해를 물었다. 「클라크」의 생각과 다를 리가 없었다. 이 박사는 이 말을 듣고 느닷없이 영문 타이피스트를 불렀다.
『이 봐요. 부르는 대로 「딕테이트」(받아쓰기)해요. 이제 이 미국의 두 장군이 항복서를 부를 거요. 직접 전쟁을 지휘하는 두 분이 이러저러해서 전쟁에서 이 길 수 없어 항복하노라고 나에게 써 주어야 나도 그걸 갖고 국민에게 알아듣도록 설명할 것 아니요?』
물론 그 두 사람의 장군은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이 박사는 그후 한 달이 지나 6월18일엔 반공포로를 전격적으로 석방해 버렸다. 막후에서 수근거리던 미국의 입장에 결정적으로 찬들을 끼얹은 조처이다.
포로 석방은 미국엔 청천의 벽력이었다. 3차 대전의 위협마저 느끼게 되었다. 미국은 그제서야 당황하고 한국의 양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내선 「월터·S·로버트슨」이 특사로 날아오는가 하면, 매사에 적어도 이해를 구하는 「제스처」만은 잊지 않았다. 만일 미국일변도의 휴전이 성립되었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티우」대통령은 지금 몇 개의 카드를 갖고 있다. 하나는 휴전을 깨어놓는 군사적 도전을 생각할 수 있다. 휴전후의 선거를 마비시키는 선동도 있을 수 있다. 월맹포로의 석방거부도 가능하다. 미국은 한국휴전에서 체험한 그와 같은 잠재적인 함정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하다.
「티우」정권은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 국민의 절대 지지를 받고 있는지도 의문이 없지 않다. 그러나 미국이 암묵리에 그를 오늘의 대통령으로 「서포트」(지원)한 것은 숨긴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순간 미국의 이해에 얽매어 「티우」의 입장을 고립시키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엄연한 주권국가의 원수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끔 된 것엔 따뜻한 이해와 동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티우」의 주장엔 바로 여기에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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