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는 명문 경기고|「화동74년」영동에 새 보금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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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름높은 화동언덕』(경기 교가)에서 고희를 넘긴 경기고등학교가 오는 74년 정든 74년간의 화동언덕을 떠나 한강이남 영동지구로 옮긴다.
경기의 전신인 관립중학교가 신학제에 따라 화동에서 첫 문을 연 것이 1900년 10월3일(대한제국 광무4년). 우리 나라 최초의 중학교였고 그 때로서는 최고 학부였다.
우연한 일이지만 신학문의 필요성과 국가 동량지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 구한말정부가 우리 나라 중등교육의 요람지로 택한 화동은 개학파의 기수 김옥균·서재필·박영효 등이 살았던 곳이다.
화동은 원래 홍현(붉은 고개)으로 불리던 곳, 지금도 화동에는 민가가 차지하는 면적은 얼마 안되고 대부분 경기고등학교가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곳에 김옥균선생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경기고교 부지1만1천여편은 화동1의17(5천여 평)과 화동106(3천4백평) 의 두 지번으로 돼 있는데 이중 북쪽에 있는 화동1의17 5천여 평이 김옥균선생 소유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서울시 소유로 돼 있는 이 땅에 대해 김옥균선생의 손자 김성한씨(54·서울서대문구 연희동 B지구 아파트 1동207호·고균의 양자 영호씨의 장남) 가 지난해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김성한씨는 순종황제가 1910년 충달공이란 시호를 김옥균선생에게 내리고 그 연시식을 경기전신인 한성관립고등학교에서 베풀도록 지시, 당시 황성신문이 『김옥균선생의 구택기지인 동교구내에서 열렸다』고 보도된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등기부장에는 1918년 5월15일 이완용 내각의 참정대신 박제순의 이름으로 소유권 보존등기가 됐었다. 박에게 넘어오기 전에는 한말의 척신 민영주, 다시 윤치소·박영효 등이 살았다. 그후 매매로 창덕궁에 넘어갔다가 환지로 총독부 땅으로 됐고 1926년 경기도 소유로, 다시 해방 후 서울시유지로 됐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김옥균선생 등이 역적으로 몰려 재산이 몰수된 후 어떤 경로를 밟아 박제순에게 넘어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김성한씨의 소유권 주장도 햇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고등학교 운동장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은 화동106 3천4백평은 서재필 박사의 딸 「뮤리엘·제스」씨 소유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56년 4월12일)이 났다.
민속학자 김화진 옹에 따르면 서 박사는 7살 때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올라와 계동에 있는 당숙 서흥범 집에 살다가 15살 때 김옥균 선생 집에 머무르면서 공부, 18때 일본호산 군관학교에 유학했다. 갑신경변 때 명조참판 겸 정령관이 됐으나 정변이 실패,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후 갑오경장으로 개학파가 득세하자 개화파는 모두 죄를 벗었으나 김옥균선생은 상해에서 자객의 손에 숨지고 재산을 되찾을 사람이 없었으나 서 박사는 귀국, 자기소유 3천4백 평을 자기명의로 해 놓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경기고등학교 본관과 과학관 사이에 지상높이 1m 정도로 두꺼운 원형들이 있는데 김옥균 선생 집 우물터라고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서장석 현 교장은 우물터들에 동평재라는 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김옥균선생의 호는 고균이기 때문에 김옥균선생의 우물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이전에 있어 인구분산책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는 서 박사의 땅이 대법원의 판결로 판가름나 3억5천여 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대로 돈을 주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지금도 강당 쪽에는 수령 3백여 년이 되는 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경기동창들은 이 나무를 모교의 터줏대감으로 생각하고 있을 만큼 정든 나무다. 이 나무는 원래 가회동에서 안국동으로 넘어오는 홍현의 길목에 있었던 것이다.
격동하던 한국근대사의 풍운기에 태어난 경기는 그 동안 험한 파란을 수 없이 겪었다. 학교 이름만 해도 관립중학교(1900∼1906) 관립한성고등학교(1906∼1911) 경성고등보통학교(1911∼1921) 경성 제일고보(1921∼1925) 경성제일공립고등학교(1926∼1938) 경기공립중학교(1938∼1945) 경기고등학교 등 7번이나 바뀌었다. 그 동안 초대 김각현 교장에서 현 서장석 교장까지 모두 35명의 교장이 갈리면서 1만6천여 명의 수재 등을 배출했다.
경기고교의 대지 가운데 서재필씨 딸 소유 토지 값은 올해부터 9천9백9만원씩 3년간 연부 상환키로 하고 72년도 예산에 계상까지 했으나 서씨 측과 최종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금도 협의 중에 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시교위는 앞으로 경기고교의 땅값지불과 새 건물 건립비 등을 염줄 하기 위해 현 교지를 매각 처분할 예정인데 약7억원을 계상하고 있다. 따라서 평당 7만원 정도를 받아야 하는데 덩어리가 워낙 커서 적당한 매수인이 나올는지 걱정하고 있다.
경기43회 졸업생이며 모교에서 16년간 물리를 가르치고 있는 김유석 선생(44)은 『정든 화동을 떠날 생각을 하면 섭섭하지만 더 큰 경기를 키우기 위해 영동으로 간다니 반가운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경기자리가 누구에게 어떻게 넘어가고 어떤 곳으로 쓰이게 될지 염려스럽다』고 미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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