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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 왕비 첫 도착지는? 버스로 가는 부산 시간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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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예명숙(왼쪽)·임회숙씨가 함께 펴낸 저서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을 만나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시내버스를 타면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방을 주시해야 하는 자가용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하철과는 다르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달리는 버스는 도시를 제대로 보기에 좋은 교통수단이다.

 시내버스의 이러한 특성에 주목한 임회숙(42)·예명숙(53)씨 등 두 여성이 『시내버스 타고 부산을 만나다』(까치 출판)를 최근 펴냈다. 임씨는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이고, 예씨는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부산시 관광진흥과에서 스토리텔링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1년 동안 버스를 타고 부산시내 구석구석를 다니면서 자료를 모으고 사람을 만났다.

 262쪽짜리 이 책은 부산시내 관광명소 44곳을 버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관광지마다 타고 갈 수 있는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번호를 맨 앞에 적었다. 두 사람은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거나 지나쳤던 이야기들을 찾아내 의미를 부여한다. 58, 1009번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돌투성이인 망상도(강서구 지사동)는 2000년 전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허황옥이 인도에서 배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망상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 다문화가정의 출발지점이었다고 해석한다. 다문화가정 부부들이 찾아보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한다.

 338번 시내버스로 찾는 백양산 운수사(사상구 모라동)는 범어사보다 오래된 가야시대 창건된 절이지만 부산사람들은 잘 모르는 곳으로 소개한다. 백양산 기슭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낙동강 건너 김해평야에서는 대웅전이 보인다. 이러한 운수사의 지리적 특성을 놓고 세상 이치는 멀리서 볼 때 더 잘 보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40번 등 여러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서면 카페거리(부산진구 전포동)의 변화도 알려 준다. 공구거리로 유명했던 이 거리에 젊은이들이 몰려오면서 생긴 변화다. 쇳가루 날리던 곳이 커피향 나는 특색 있는 카페거리로 바뀌는 현상을 놓치지 않았다.

 9-1 버스로 가는 아미동 비석마을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이다. 집 축대로 ‘메이지(明治)’라고 새긴 돌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제시대 일본인 공동묘지였던 곳에 피란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생긴 동네로 소개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 책의 내용을 줄여 내년 4월에 중국인을 위한 가이드북을 낼 계획이다. 영어와 일본어 가이드북도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 배낭여행객을 위해서다.

 임씨는 “모두 바쁘지만 시내버스를 타 보면 삶이 느려지는 것을 깨닫는다. 내 고장의 명소들을 천천히 둘러보면 부산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부산시민이 먼저 내 고장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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