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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산책

젊은 나에게로 돌아가 가르쳐주고 싶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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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혜 민
스님

우리나라 나이로는 마흔이 지난 지 이미 오래지만 미국 나이로는 다음 주에 마흔이 된다. 이제 인생의 절반쯤 살았다는 생각이 드니 지금까지의 삶을 중간점검하듯 찬찬히 돌아보게 된다. 열심히 살아왔음에, 삶의 의미를 찾으며 공부하고 수행하는 행복한 시간이 많았음에 감사함이 먼저 일어났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쉽고 후회되는 일들도 많다. 그중에서 특히나 ‘내가 진즉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젊은 나에게로 돌아가 지금의 깨달음을 가르쳐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도 해본다. 혹시라도 내 경험이 젊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창피하지만 그 경험을 나누고 싶다.

 그리 풍족하진 않았지만 나는 감사하게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덕분에 성격도 밝았고 자존감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칭찬에 인색하지 않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누군가로부터 꼭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욕구나 정서적 결핍이 없는 무난한 아이였다. 그런데 나를 아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던 환경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처음 왔을 때, 그리고 외국어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먼저 추수감사절 같은 미국 명절이 돌아오면 나는 졸지에 가족 없는 외로운 고아가 돼버렸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비주류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은 커져만 가는 반면, 내가 삶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자신감은 점점 줄어들기만 했다. 더구나 학부 때와는 달리 공부의 양이 매우 늘어난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영어가 모국어이고 머리도 좋은 미국 친구들과 경쟁하며 뒤처지기 일쑤였다.

 이런 새로운 상황을 겪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교수님들로부터 인정과 관심을 좀 받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관심받고 싶다는 욕구는 자기 스스로를 종종 초라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나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결정하도록 그 권리를 양도해버리는 셈이 되니, 그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천국도 갔다가 지옥도 갔다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강해질수록 본래 나의 모습은 버리고 내 가치를 매기는 사람의 틀에 맞춰 나를 바꾸게 된다. 물론 그렇게 바뀐 내 모습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내 경우에는 박사 논문 주제를 정할 때 내가 정말로 관심 있었던 선승들의 깨달음과 관련된 철학적 주제보다는 당시 미국 학계에서 환영받는 주제, 학계의 권력 있는 교수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로 정하는 우를 범했다. 즉, 내가 의미를 느끼고 재미있어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고 다른 학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줄 것인가에 더 비중을 둔 것이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큰 실수였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내 연구는 결국 기존에 형성된 학계의 틀로 들어가 그 틀 안에서 조금 새로운 뭔가를 공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가만히 보면 학계의 큰 학자들은 타인이 보내는 빠른 인정보다는 자신의 관심 분야가 주는 지적 재미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그러면서 묵묵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성실히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본인만의 독창적인 틀을 만들어내고, 그러다 보면 본인이 구걸하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서 그를 크게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전 세계 유명 박물관마다 그림이 걸려 있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과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그들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고 한다. 파리의 한 카페에 모여 자신들이 추구하는 화풍을 버리고 ‘살롱’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스 국전에 나가서 수상을 해 인정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작더라도 자신들만의 그룹전을 따로 할 것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이들은 그때 본인의 스타일을 밀고 나가는 후자의 길을 택했고, 그 덕에 미술사에 남는 새로운 틀, 인상파가 완성된 것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을수록 빨리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강해지는 것 같다. 그 욕망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사회가 인정하는 틀 안으로 들어가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그 유혹에 빠지면 그것에 상응하는 내 안의 무언가를 잃게 된다. 시간이 걸려도, 비록 빠른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내공의 빛을 사람들은 알아본다.

혜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