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종 시대의 지리학적 업적|제5백26돌「한글날」기념 노도양 박사 강연 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이관구)는 제5백26돌「한글날」기념 및 주시경 선생 추모강연회를 11일 하오 홍능에 있는 동 기념관에서 가졌다. 이날 김선기 박사는「주시경 선생의 업적」을, 노도양 박사는「세종 시대의 지리학적 업적」을 강연했다. 다음은 노 박사(명지대교수)강연 요지다.
세상의 모든 사물을 시간적으로 보면 역사이고, 공간적으로 보면 지리라고「칸트」가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인은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만 지리에 대한 관심은 희박한 것 같다. 세계사를 보면 어느 민족이나 자기국토에 관심이 깊고 이를 사랑하고 잘 이용했을 때 전성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민족에 대한 자각과 아울러 국토를 잃지 않을 때 문화적 황금시대를 맞는 것이다.
또 훌륭한 군주는 반드시 국민과 함께 국토를 한없이 사랑했고 훌륭한 지리학자를 낳고 훌륭한 지도를 작성했으며 좋은 지리 서를 남겼다. 「로마」전성기「스트라보」의「제오그라피카」,「사라센」전성기의「쿠르다드비」의 여행기, 독일「뮌스터」의「코스모그라피아」, 수의 구자도지언 1백29권 등 당·송·원·명의 관선지리지들이 그 예다. 우리 나라에선 세종 시대에 세계사적인 이같은 경향을 볼 수가 있다. 세종은 한국토의 영역을 확정했으며 서북지방에 신사군을 설치하고 동북부에는 육진을 두어 국경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세종은 육진을 설치할 때 김종서에게『조종의 구강을 촌 토라도 줄일 수 없다』고 명했고 김종서도『비록 척지촌토라도 버릴 수 없다』고 부하에게 격려했다. 세종 이하 국민이 국토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다.
세종은 한편 양성지를 시켜 전부터 전해오던 지도를 수정하고 또 새로 실측을 통해 더 정밀한 지도를 작성케 했다. 「팔도도」와「여연·무창·우예·삼읍도」등 많은 지도를 만들었다.
또 세종은 1424년 대제학 변계량에게 주부군현의 연혁을 찬진하라고 말했으며 1432년엔 「신찬팔도지리지」가 찬진됐다. 1454년엔「세종실록지리지」8권이 이뤄졌다.
『신찬팔도지리지』는 책명만 전해왔으나 오직 하나 만남은『경상도지리지』를 통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경상도지리지』로부터 신찬팔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또 그 뒤에 경상도 속찬지리지를 거쳐 1481년 성종12년에『동국여지승람』50권으로 발전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이의 원본이 된『대명통일지』는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건치연혁·군명·형승·풍속·산천·토산·공서·학교·서원·궁실·관양·사관·사당·능묘·고적·명환·유우·인물·열녀·선석 등의 20항목으로 돼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이처럼 항목이 뚜렷하진 않으나 예조가 각 지방에 통첩한 13개 항목은 이와 상당히 유사하다.
현대지리학의 사조는 아직도 환경 논이며 지인상관론이 핵심이다. 자연과 인간이 상호교섭해서 모든 문화활동이 벌어지고 문화·경제등 각 경관이 형성된다는 관점이다.
이로 보면『세종실록지리지』는 이런 현대지리학의 중심사상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방법론적으로 실천에 옮겨본 책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8권은 현대지리학의 중심 사상이 된 지인상관론의 선구자가 됐고, 질적으로 내용이 풍부하고 후세 한국지리지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어떤 지리적 문헌보다 그 가치가 높은 것이다. 독일의 위대한 지형학자「펭크」는『지리학의 최후의 꼴은 지지』라고 했는데 이미 4백년 전에『세종실록지리지』는 편찬됐던 것이다. 조선왕조 28왕 중에서 오직 세종만이 8권의 지리지를 가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