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한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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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면 우선 「프랑스」어나 영어를 손꼽는다.
그렇지만 기묘하게도 「프랑스」어나 영어처럼 비합리적이며, 불규칙한 언어도 없다.
언어의 아름다움이란 너무 틀에 박히지 않는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조차 들 정도이다. 「프랑스」 말이 아름다와진 것은 결코 한 두 언어학자 때문만은 아니다. 「몰리에르」「몽테뉴」「말라르메」「지드」등 수많은 시인·작가들이 몇 백년을 두고 틀을 깨뜨리고 다듬고 하여 그 언어를 아름답게 가꾼 것이다.
여기에는 또 특히 18세기에 이른바 「살롱」을 중심으로 한 상류사교계에서의 말들이 가꾸어지고 「아카데미·프랑스」를 통한 의식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도 저버릴 수 없다.
영어 역시 「셰익스피어」·「초서」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자들의 밑받침이 없이는 아름다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또 자기네 국어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국민들의 긍지와 그 아름다움을 한층 키우겠다는 노력이 있었다.
그 좋은 본보기가 「파울러」형제이다. 영어사전 중에서 가장 애용되는 것은 「파울러」관용어 사전이다. 제2차 대전 때의 일이다. 「몽고메리」장군의 「노르망디」상륙작전 보고서를 받아본 「처칠」은 『자넨 「파울러」의 책을 읽어야겠군. 이런 때엔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네…』했다는 일화가 있다.
「파울러」는 시골 중학교의 한 교사였다. 어느 날 교장과 다툰 끝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선 그는 동생과 함께 사전을 펴낼 마음을 먹었다. 그의 나이 40세가 넘어서의 일이었다.
그후 그는 시골에 틀어박혀 동생과 함께 사전 엮는데 몰두했다. 10여년이 지난 다음에 드디어 사전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일은 멎지 않았다. 80여세로 죽을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나갔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서 언어는 더욱 아름다와지고 풍부해져 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5백26번째의 한글반포 기념일을 맞는다. 그만큼 역사가 긴 것이다.
「H·G·웰즈」도 그 「세계문화사」에서 한글을 세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언어라 찬양한바 있었다.
사실 한글만큼 합리적인 언어는 없다. 또 『앞에 서고 뒤에 서고 태산같은 고봉준령 허위허위 올라가서 승지에 다닫거다…』(화전가) 하던 때와 지금의 한글 문장과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그러나 3백년전의 그때보다 지금의 말이 더 아름다와졌다고는 볼 수 없다.
언어의 아름다움은 그 순수성만을 지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외래어, 특히 한자를 제한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한글이 우수한 언어였다는 사실만을 들춰낸다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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