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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 「퇴폐단속」에 맞서는 시민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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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퇴폐풍조 단속이 현 정권의 한계를 넘어 탈선돼있다. 이른바 장발족 및 「고고」춤의 일체단속이 내려질 때마다 치안 당국은 조발을 거부하는 시민의 머리에 가위질을 함부로 하는가하면 빗나간 혐의를 씌워 즉심에 돌리는 등 억지 처벌을 예사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단속 때마다 시민들은 당국의 퇴폐풍조 제거 노력에 찬의를 나타내면서도 사전 계몽이나 유예 기간도 주지 않고 번번이 기습적으로 실시하는 즉흥적 행정에 선의의 인권이 짓밟히는 사례가 흔치 않나 걱정하고있다.
지난 1일부터 전국 경찰을 동원, 실시된 퇴폐풍조 일제 단속에서 전국에서 장발족 1만 2천 4백 15명, 「고고」족 4백 22명이 적발됐다. 그러나 이번 단속에서는 장발족 가운데 56명의 조발 거부 시민이 나타났다. 대부분 억지 조발에 반발했기 때문.
전재규군(22·재수생)의 경우 지난 2일 밤 9시 30분쯤 친구들과 함께 명동을 지나가다 장발이라는 이유로 파출소에 연행됐다. 김군은 머리를 깎으려는 경찰관에게 『무슨 법률의 근거로 남의 머리를 깎으려 드느냐』고 40분 동안 항변했으나 3명의 경찰관에게 억지로 머리 3군데를 깎였다.
2일 상오 9시 50분쯤 종로 경찰서 신문로 파출소에 연행된 지귀환군(21·서울 법대 2년)은 『장발이 타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것은 주관적이 아닌가. 장발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내 머리를 내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냐』면서 삭발을 거부했으나 경찰은『모두 깎는데 왜 너만 안 깎으려 하느냐』면서 4시간 동안 옥신각신 끝에 삭발했다.
경찰은 2일 일부 조발 거부 시민을 경범죄 처벌법 27항(불안감 및 혐오감 조성) 및 28항 (소란 행위) 등을 적용, 즉심에 넘겼으나 서울 형사지법 즉결 2과 최만행 부장판사가 『장발자체로서는 즉결 심판의 대상이 안 되어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해 모두 도로 데려갔다. 최 판사는 『간혹 재판 때 장발족에게 머리를 단정히 하라고 권고는 하나 젊은 사람끼리는 장발이라 해서 어른처럼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또 법률상 처벌대상도 안되어 지금까지 처벌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단속은 「고고」춤의 경우에도 흔히 경범죄 처벌법 1조 28항(공중소란 행위)을 적용, 즉심에 넘기면서도 이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고고」춤을 추게 한 위반 업소는 거의 단속을 소홀히 하고있다.
이번 단속에서 춤을 추게 하다 업태 위반업소로 적발, 업주를 처벌한 것은 고작 「후라밍고」회관 (주인 최기웅 종로구 낙원동 낙원 「아케이트」 4층) 1개소 뿐.
경찰은 서울시내 1백 50개소의 「카바레」,「나이트·클럽」,「바」등에서 대부분 밤마다 2백원∼1천원씩의 입장료를 받고 청소년들을 입장시켜 「고고」춤을 추게 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묵인하고 있는 실정.
이번 일제 단속에서도 경찰은 이들 업태 위반업소는 손도 대지 않고 남산동·오장동·청진동 일대 해장국 집과 명동 일대의 다방을 새벽부터 덮쳐 해장국과 「모닝·코피」를 마시고있던 청소년 1백 85명을 연행했었다.

<"단속의 취지 이해되나 교육과 설득으로 개선해야">

<모호한 단속 법규>
▲최광률씨(변호사) 머리카락도 신체의 일부로 엄연히 개인의 재산에 속하는 것인데 동의 없이 잘라냈다면 단속자는 형법상의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더벅머리가 주는 인상은 그리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일반이 단속 취지를 이해는 하나 이는 사회 교육 등 설득을 통해 개선되어야지 단속 법규마저 모호한데 강제력을 갖고 처벌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기본권의 침해가 아닌가 생각된다.
머리가 긴 이유만으로 반도덕적이라면 종래의 관념을 벗어난 빨갛고 파란 「와이샤쓰」를 입어도 반도덕적이 될게 아닌가.

<애교로 받아들여야.>
▲정연희씨(여류작가) 사회생활을 건강하게 살 필요는 있다.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애교있는 유행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오는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유행을 한꺼번에 무섭게 규제하기보다는 다른 차원에서 선도가 앞서야한다. 외국에서 볼 수 있는 「히피」처럼 추잡스러운 것은 아닌데 잡아들이는 것은 젊은이의 숨통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닐까.

<행정권의 남용이다>
▲유봉호 교수(이대 교육학과) 하나의 유행을 일방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도덕적이나 교육적으로 보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생활의 합리적 사고로 머리가 길면 세발하기 불편하다는 등 설득과 방법으로 그들 스스로의 판단에 맡겨야지 행정권으로 남의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권리의 남용이다.

<설득과 권고 앞서야>
▲이근식 교수(연세대 학생처장) 요새 젊은이들의 장발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하면 「장발」이라고 할 수 없다. 일부 구세대에서 긴 머리가 혐오감을 일으킨다고 그 제재를 원하고 있지만 그것을 처벌하거나 강제한다는 것은 교육적인 방법이 아니다.
지금 장발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유행으로 그냥 두어도 유행에 따라 없어질 것이 아닌가. 학교에서는 설득과 권고로 학생 스스로 단정한 머리를 하고 다니도록 권장하고 있다. 당국이 강제로 남의 머리를 깎는 것은 단속 의식이 법 밖을 벗어난 행위로 본다.

<혐오감, 주관적 판단>
▲백승웅군(21·고대 상대 경영과 2년) 장발이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꼴불견이라 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여자는 머리를 기르고 남자는 꼭 깎으라는 법칙이 없다. 또 삭발을 할 법적 근거도 없다. 형식에 얽매지 않고 개인의 머리를 자유스럽게 기를 수 있다고 본다. 타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가. 머리를 길러 잘 가꾸면 오히려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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