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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외교…그 표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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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의 대 유엔외교는 지난 48년 유엔에서 한국이 승인을 받기 전부터 시작됐다.
「유엔」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50년대까지 한국은「유엔」문제로 고민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나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아프리카」신생국이 대거「유엔」에 가입되면서부터 이 판도는 서서히 변해왔고 비동맹 중립만을 내세웠지 사실상 행동의 원칙이 없는 38개 「아프리카」신생국 때문에 유엔외교는 까다로워졌다.
이들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개인적 친분을 두터이 하는 길이 최선이라는 것. 외교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매년「한 표」를 부탁하기 위한 이 외교공세는 선거 때마다 입후보자들이 겪는 듯한 저자세와 정력소모의 비애 그대로다.
대「유엔」외교에는 돈이 많이 든다. 외무부예산 중 인건비와 유엔 대책 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우리외교에서「유엔」외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몇 년 전에는「유엔」대표단의 수석대표로「유엔」에 갔던 사람이「유엔」대표부의 판공비까지 모두 바닥을 내 현지대사로부터 항의를 받은 일도 있다.
대표단의 현지교섭과정에는 각 국「유엔」대표에 대한 선물·연회비용뿐만 아니라 끝까지 유동적 태도를 취하는 신생국과의 교섭을 위한 특별대금 등 각가지 형태. 평소에는 외교교섭을 할 필요가 거의 없는 나라에 특별사절단을 보내랴, 공관을 설치하랴, 적으나마 원조를 하랴, 주「유엔」대사를 초청하랴, 상당한 비용이 순전히「유엔」대책 때문에 소비된다.
한국문제에 대한 표결이 밤이나 주말에 있게되면 우리대표단은 또 한번 부산을 떨게 된다.
밤이면 여기저기서 열리는「파티」 에 가거나 주말이면 총 회장에 나오지 않은 지지 국 대표들의 소재를 항상 파악해서 이들을 불러모아야 하기 때문-.
그래서 「유엔」철이 되면 지역 반을 구성해 각 지역별로 유엔대표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심지어는 연회장에까지 좇아가「모셔오는」고충을 겪는다.
엉뚱한 얘기를 잘 하지만 유엔무대에서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원로인「사우디아라비아」의「바루디」대사를 6년간이나 맡았던 한 외교관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워져「바루디」로 부 터『내 아들』이란 말을 듣기도 한다. 그가 한국문제로 발언할 때마다 옆에 붙어 앉아 불리한 발언을 견제할 정도가 됐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고충은 많았다고-.
「뉴요크」에 있는 우리 주「유엔」대표부는 할일 많은 공관 중의 하나다. 특히 파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신생국대표단이 베푸는「파티」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해야하고 다른「파티」에 나가서도 신생국대표들에게 각별한 호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
외교관들간에는 중국요리가 가장 인기여서 한때는 자유중국대표를 중간에 넣어「아프리카」대표단을 초대한 적도 있다는 것.
또「아프리카」신생국 대표 가운데는 수석대표 외에 국왕이나 대통령의 아들·동생 등이 포함되는 적이 있어 실질적인 실력자가 누구인지 몰라 대표·수행원 전원을 초청해야 할 적이 있다고.
「리셉션」·만찬 등 각종「파티」와 개별적 접촉 등 로비활동의 종류는 다양한데 상대에 따라 기호와 취미를 사전에 탐지하기도 한다.
특별히 좋아하는「레스토랑」과 즐겨 마시는 술 종류까지 미리 알아서 대접을 하면『당신은 어떻게 나의 기호를 그렇게 잘 아느냐』면서 얘기가 아주 잘 된다는 것.
몇 해 전에 있었던 일-. 「뉴요크」에 처음 온 어느「아프리카」대표를 접촉하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처음엔 전화연락을 하면 바쁘다고 시간을 내주지 않았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뉴요크」의 지리도 잘 모르고 안건사정도 잘 몰라 접촉을 기피한 것 같다는 것.
총회표결 전날에 간신히 만나 저녁을 나누고, 술을 마시고, 또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며 한국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막상 총회회의장에 그 대표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대표부직원은 부랴부랴 그 대표가 묵고있는 호텔로 찾아갔다.
그 대표는 아직 잠자리에 있었다. 마치 시종처럼 양복을 받쳐들고,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고, 자동차를 대기시켜 총 회장으로 모셨다.
이 대표는 회의장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말문을 열었는데『당신은「사우드·코리아」냐 「노드·코리아」냐』고 묻더라는 것.
연중을 통해 거의 끊이지 않는 초청외교는 9, 10월의「유엔」을 다지기 위한 것.
초청을 받는「아프리카」정부고관이나 외교관 중에는「아시아」를 처음으로 여행하는 사람이 많고 때로는 엉뚱한 청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
몇 해 전에 초청되어 서울에 왔던「아프리카」어느 나라의 수상은 우리정부고위층을 만나 느닷없이 군사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 군사원조란 다름 아닌「지프」5대였다.
「군사원조」라는 말에 짐짓 놀랐던 우리측은「지프」5대라는 말에 마음을 놓고『고려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이「지프」5대는 그 후 군사원조라는 명목대신 경제협력의 이름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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