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남-북 연방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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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일성은 지난19일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 매일신문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새삼 남-북 연방제안을 강조했다고 한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적십자회담을 정치회담으로 이끌어가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냈을 뿐 아니라, 그밖에도 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의의 구성, 남북의회의원연석회의 등을 주장함으로써 그들만이 적극적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하려고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혈안이 되고 있었는데, 그러한 일련의 정치공세중의 하나가 이 연방제안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도 이 연방제에 대한 연구와 대책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조금도 게으름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

<연합 제와 연방제의 혼동>
분단국가의 통일에 있어 연방 론을 주장한 것은 물론 김일성이 처음이 아니다.
동독은 서독과의 통일원칙으로서 동·서독의 사회체제를 유지하면서 연합할 것을 주장한 바 있었던 것인데 김일성은 이를 모방하여 수년 동안 연방 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동독이 주장하는 연합 론과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 론 이란 같은 뜻과 목적을 가진 것으로,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의 공통된 통일전략으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일성은 그 자신이 창안했다는 이른바「주체」사상을 내세우고 있는 자이므로 바로 그 장본인이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주체성의 한계를 보는 듯한 감도 없지 않다. 본래 연합(confederation)과 연방(federation)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김일성이 이 차이를 인식하면서 동독과는 다른 연방 론을 주장하고 있는지는 썩 의문이다. 다만 우리가 보기에는 김일성은 이러한 구별을 고의로 흐리게 하면서 국가의 연합, 즉 연방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두 국가나 여러 국가의 통합과정을 보면 국제법적인 연맹관계에서 국내 법적인 국가연합단계를 거쳐 연방제도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독립과정에서도 최초에는 연합규약에 의하여 13개 주가 연합하였다가 1787년에야 연방제로 발전한 것이다.
스위스는 중세에 있어서의 각 영주들의 느슨한 동맹관계에서 연합체계로 들어갔다가 1848년에 연방제도를 채택했었다.「캐나다」는 1867년에 북미 법에 의하여 연방제로 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프랑스어를 쓰는「퀴벡」주의 분리운동 때문에 연합 제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반대의 경향을 밟은 것이 영연방이다.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은 대영제국에서 식민지들이 독립한 뒤에도 계속적인 결합상태를 이루고 있는데 특색이 있다.
이에 대하여 소련의 연방제는 공산당에 의하여 엄격히 중앙집권화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전례 없는 이 체제간 연방 론>
연방제를 채택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구성지분 국을 구속하는 성문헌법이 있어야 하고 구성지분 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상원과 연방전체를 대표하는 하원이 구성되어 입법을 하여야하며, 이 입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있어야하고, 행정의 합법성이나 법률의 합헌성판단과 구성지분국가간의 분쟁해결을 위한 연방법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동질적인 민주주의국가간에 있어서나, 동질적인 공산주의국가간에 있어서의 연방제는 그다지 큰 곤란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헌법에 씌어진 용어나 제도가 통일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념과 사상·제도의 차이가 현격한 민주국가와 공산국가간의 연방제도란 사실상 있어 본 적이 없다. 헌법의 해석이나 적용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2개 국가가 그 상위에 있는 헌법을 제정하는데 동의하거나 그것을 통일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연방제국가에 있어서는 다수의 구성지분국가가 모두 대등한 것으로 인정되어 어느 한쪽의 지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인구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고, 부에 있어서도 현격한 격차가 있는데 연방의회와 연방정부의 구성을 인구비례로 할 것인가, 또 다른 기준에 의할 것 인가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또 연방법원의 판사는 어떻게 임명하며, 연방의회의원은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등등에 합의하는 것은 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남-북한이 설사 서로를 모두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연방을 형성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양쪽이 현재 제삼국들과 맺고 있는 상호방위조약의 효력은 어떻게 될 것이며, 외국과의 채권·채무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남-북한을 통한 연방을 위한 제헌회의의 경우에도 그 의원들의 선거를 진정한 민주주의방식에 따라 선출하는 것을 북한이 허용할 것이냐 도 문제가 될 것이며, 북한이 노동당과 그 우 당 이외에 민주정당의 활동을 보장할 용의가 진정으로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더 급한 남-북 조절 위 활용>
이렇게 볼 때, 김일성이 제시한 남-북한 연방 론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한마디로 말해 서 우리는 김일성과 북로 당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연방 론을 펴서 선전목적으로 삼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들에게 진정 통일을 실현시키려는 성의가 있다면, 현재 구성되어 있는 남북조절위원회를 조속히 활용하여 경제교류·문화교류 등을 함으로써 상호간의 극단적인 이질성을 해소하여 어느 정도의 동질성을 유지한 다음에나 남-북한 정권담당자와 국회의회의 회의에서 선거·정당·조약문제 등에 관한 예비절충을 끝낸 다음 국가연합을 시험적으로 운영해 보고 그것이 성공하거든 자유선거를 통한 통일정부를 구성하도록 하여야만 할 것이다.
남-북 적십자회담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하면서 남-북 연방제안을 재 강조하는 것은 그 속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북한이 남한적화의 야욕을 진정 버렸다고 한다면, 우선 남-북 한간에 신문·잡지 등의 자유배포에 동의하고, 문화교류와「스포츠」교류를 실시하며, 경제교류를 단행하여 남북간 자유의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에 단계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민족의 통일은 지상과업이다. 그러나 진정 코 통일을 원한다면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임해야하며, 일거에 이를 달성하려고 하지 말고 일 보 일보 견실하게 통일의 기반을 다져나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 정부로서도 이제는 북의 선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선거를 통한 통일방안 등 장기적 통일방안을 마련하여 강력히 국내외에 선포하여 선전공세에서도 단호히 맞서야만 할 것이다. 정부는 통일원이며, 기타 통일기구의 연구를 토대로 한 진정한 민주통일방식에 관한 청사진을 하루 속히 제시해야할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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