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용어>
1929년10월 휘문 운동장에서 처음 시작된 제1회 경·평전은 평양이 2승 1무로 이겼지만 그때 누가 언제 「골」을 넣고 「패스」를 해주었느냐 에도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평양 「팀」에서는 무오단 소속의 정원순이 「백」을 보는데 「돼지」라는 별명 그대로 미련하고 우직하면서도 잘했다는 것이며 한영택과 강기순은 어찌나 잘 깠던지 인상에 남고 김봉덕은 우악스런 평양 「팀」 가운데도 기술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경성 「팀」은 지금의 표현으로 「홈·그라운드」의 「팀」이었는데도 까기보다는 기술 「플레이」를 하다가 졌다는 얘기이고 특히 선수 선발이 잘못 돼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여기서 그때의 득점을 누가 했느냐를 구전되어오는대로 기술할 수도 있지만 말이 모두 다르니 생략하고 그때 쓰던 축구의 용어를 소개함도 재미있을 듯 하다.
그때도 선수들간에는 「센터링」이니 「프리·킥」이니 하는 영어를 쓰기도 했다.
이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서병의 씨라든가, 중국 상해에서 갓 돌아온 신국권씨 (해방 후 미군정 외무부 근무) 등이 심판을 맡은 한편 축구 「룰」을 번역하고 영어 술어를 보급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사람이라든가, 신문에서는 우리말로 번역해 썼으니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재미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코너·킥」을 우축, 「헤딩·슛」을 두탄, 「골·킥」을 문축, 「핸들링」을 촉수, 「롱·킥」을 장축, 「타임·업」을 시진, 「쇼트·킥」을 단축, 「와일드·차징」을 폭습, 「패널티·킥」을 징축이라 한 것 등이다.
또한 이는 극히 일부 신문에 사용된 것이긴 하지만 「포지션」을 한자 화했는데 마치 고문을 읽는 듯하다.
GK는 루수, LF는 좌후위, RF는 우후위, LH는 좌전위, CH는 중전위, RH는 우전위, LW 좌익, LI 좌선공, CF 중선공, RI 우선공, RW 우익이라 했다.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제2회 경·평전은 다음해인 1930년 11월28일부터 3일 동안 지금의 서울 운동장인 경성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때 경성군은 GK 송기우 (보전) FB 김정식 이용겸 (세의전) HB 김용식 (보전) 김원겸 (보전) 박인식 (보전) FW 김화집 (보전) 김성태 (보전) 이영민 (연우) 최성손 채금석 등 11명이었다.
제1회 대회 때는 연전 중심으로 선수 선발에 있어서 말이 많았고 끝내는 약체라는 말을 면치 못했는데 이때만큼은 한두 명이 문제였지 전 경성군이란 이름에 손색이 없었다
특히 「포워드」진은 이영민과 김화집만이 다른 「멤버」였지 최성손 채금석 김성태는 경신 중학 시절부터의 명 「콤비」요, 뒤를 받쳐주는 김용식도 또한 경신 시절부터 발이 맞는 사이여서 공격은 경신 일색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한편 전 평양은 GK 김길수 FB 정용수 (연전) 정원순 (무오단) 강기순 (보전) 차복준 (경신 졸) FW 김기덕 (숭전) 한영택 (숭중) 김재신 (무오단) 김도진 (광성중) 오용팔 (숭중) 박영철 (숭전)의 11명이었다.
이 정도의 「멤버」면 제1회 대회 때보다는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경·평전의 전통을 특징지어 줄 일이 이때 일어났으니 그것은 선수의 소속 문제였다.
요즈음도 전국 체전에서는 선수가 본적지로 출전하는 것이 원칙이라 알고 있지만 그때도 그 논의는 있었던 것 같다.
즉 경성군에는 박인식 김화집 같은 평양 태생의 선수가 있었고 김용식도 따지고 보면 고향이 황해도일 뿐이지 자라기는 평양이어서 평양 선수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그런데도 이들이 경성군으로 출전한 것은 학교가 경성에 있었고 평양군에는 이들이 없어도 「멤버」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제2회 대회가 열린 경성 운동장은 그때 처음 세워진 것으로 지금의 서울 운동장과는 전혀 달랐다. 삥 둘러 5, 6층계의 「스탠드」가 있었고 건너편에는 허술한 담장이어서 마구 넘어들어 올 수도 있었다.
3일 동안에 2만여 관중이 보는 가운데 벌어진 결과는 1차 전에서 전 경성이 3-2, 2차 전은 평양이 5-3, 3차 전은 경성이 5-1로 크게 이겨 2승 1패로 전 경성이 승리했다.
전 경성이 이렇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1회 대회 때 보다 「멤버」가 충실한데다가 경신중학 출신의 공격진이 「쇼트·패스」의 야무진 공격을 퍼부었기 때문이었다.
전 평양은 이때도 우악과 「파이팅」으로 밀어댔지만 전경성에도 그만한 악착과 우악은 있어서 그 효과는 없었다. <계속>계속>당시의>
(558) <제자 이혜봉>|<제27화> 경·평 축구전 (3)|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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