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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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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로테스탄트」 (신교)가 한국에 전파된 지 80여년. 최초의 여 선교사로 이 땅을 밟았던「스크랜튼」 여사가 이화 학당 안에 주일 학교를 조직하여 최초의 여성 신자 3명을 얻었던 1888년이래 한국의 교회에는 여성 신도가 꾸준한 수적 증가를 보여왔다. 현재 모든 교파에서 전체 신도의 절반 이상, 거의 3분의 2를 여성 신도가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교회의 순수한 전문적인 목사의 경우 「기독교 대한 감리회」에서만 여 목사제를 인정할 뿐 장로회 측에선 아직도 논란의 대상만 되고 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에는 여 목사가 감리회 소속으로 15명이 활약하고 있을 뿐이다.
감리회에서는 이미 1930년에 여 목사제를 인정, 그 당시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약하던 「올리브」 「쿠퍼」 「채핀」 여사 등 20명의 미국 여성을 목사로 임명하여 미국 교회보다도 먼저 여 목사를 배출했었다.
한국 여성으로는 1955년 인천 등 지방 갈월 교회 전밀나 전도사와 수원 등 지방 부곡 교회 명화용 전도사가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에 6명을 비롯, 인천·부산·수원·제주·광주·대구·춘천 등지에 여 목사가 있다.
감리회의 경우 목사가 되기 위한 길은 남녀 구별 없으며 신학 대학 출신으로 해마다 신학·교육 등 주어진 주제의 논문을 4년간 계속 제출하여 과정 심사를 통과하고 또 엄격한 자격 심사까지 마쳐야 한다. 현재 이 목사직의 과정을 밟고 있는 여성이 1명이며 대개 3, 4년에 1명 정도로 여 목사가 배출되는 셈이다.
감리회 소속 목사가 1천5백여명인데 여성 목사는 그 1%를 차지할 뿐이다. 그리고 지방 단위로 전체 교회를 관할하고 있는 감리사 (2년 임기)는 전체 41명인데 여성으로는 작년에 처음 최기순 목사가 제주지구 감리사로 임명됐었다.
「한국 기독교 장로회」나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오래 전부터 총회 안건으로 나온 여 목사제를 아직 반대하고 있는 이유로 대개 성경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구절을 들고 있으며, 남성 중심의 총회에서 아직도 남존여비의 사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여신도들은 보고 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에선 아직 여 장로제도 채택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여 목사제 반대」에 대해 많은 여성 신도들은 『비 기독교적인 처사』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여신도의 수가 많아 남자의 지위를 뺏을까 염려한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성경 구절의 문제도 『성경을 글자대로만 해석하려는 고루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목사의 직이 그렇지만 특히 여 목사에게는 일할 분야가 많다. 여성 신도가 많고 여성만이 갖고 있는 문제들에는 역시 여성 목사가 맡아 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여 목사 전밀나씨 (64·여 선교회 전국 연합회 총무)는 앞으로 훨씬 많은 수의 여성 목사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옛 관습 때문에 불쾌한 일을 당할 때가 가끔 있지만 사실 교회에 나가면 여신도가 많아 더 자유롭게 신도들과 접촉할 수 있다』고 전 목사는 여성 목사의 활동을 평가했다.
현재 15명의 여 목사 중 직접 교회를 맡고 있는 사람은 8명. 그 밖의 7명은 사회 사업·산업전도·윤락 여성 선도·특수 환자 구제소 등 기관일과 학교 교목 (수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군 「김촌 여자 기술 양성원」에서 일했던 노영순 목사는 『불우한 여성이나 환자들과의 상담에서 여 목사가 커다란 힘이 돼주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산업 전도의 경우 여공 등 저소득층 여성들의 권익 투쟁에 용기와 희망을 북돋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직은 교회에서 봉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률적으로 액수가 지정된 것이 아니라 각 교회의 사정에 따라 교회 예산안에서 정해진다. 더욱이 기관 일을 할 경우 거의 봉사직처럼 된다는 것이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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